인터뷰 - 우리 학교 김영한(경제) 교수

기자명 강동헌 기자 (kaaangs10@skkuw.com)

지난 15일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약 15% 인상한 7530원으로 확정했다. 이번 인상은 2007년 12.3% 이후 최대치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2009~2013년 2.8~6.1%에 머물렀으며, 2014~2017년 7~8%대를 기록했다. 새 정부는 최저임금을 1만 원대까지 인상하겠다고 암시한 바 있다. 소득수준 개선을 통해 침체된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새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가계 소득의 실질적인 향상으로 내수 소비를 촉진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정책이다. 새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론의 첫머리로 ‘최저임금 시급 1만 원’을 내놓았다. 우리 학교 김영한(경제) 교수를 만나 이번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 성장론, 그리고 그 경제학적 바탕인 포스트 케인즈주의에 대해 들어봤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경제적 바탕은 무엇인가.
소득주도 성장론은 폴란드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케인즈는 정부의 시장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칼레츠키는 케인즈 경제학파를 계승한 포스트 케인즈주의의 한 지류 학자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칼레츠키의 ‘임금주도 성장’에서 임금을 소득으로 바꾼 것이다. 한국은 자영업자의 비율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임금을 소득으로 바꾸어 표현했다.

포스트 케인즈주의 경제학의 핵심 주장은 무엇인가.
포스트 케인즈주의는 주류 경제학은 아니다. 주류 경제학과 달리 포스트 케인즈주의는 경제 성장을 위해 소득 불평등의 해소에 주목했다. 이전의 미국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 선순환을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고 자유롭게 내버려 둘 것을 주장했지만 포스트 케인즈주의는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임금의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배는 성장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 아닌가.
포스트 케인즈주의는 경제 문제가 ‘소비 지출’이 부족하여 발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경제 선순환을 위해 전체 소비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포스트 케인즈주의는 사람들이 소비를 충분히 하지 않는 이유로 소득 불평등을 꼽았는데, 이때 사용되는 개념이 ‘한계소비성향’이다. 한계소비성향은 소득이 추가로 늘어날 때 추가 소득을 저축하지 않고 소비를 위해 사용하는 비중을 말한다. 사람들은 소득이 생기면 돈을 당장 소비하는 데 쓰거나 미래의 소비를 위해 저축한다. 예를 들어, 한계소비성향이 0.7이라는 것은 100만 원을 추가로 벌 때 70만 원은 소비하는 데 쓰고 30만 원은 저축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고소득층은 한계소비성향이 매우 낮은 반면, 저소득층은 한계소비성향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돈을 이미 충분히 많이 벌고 있는 사람들은 100만 원을 추가적으로 번다 해도 당장 소비를 위해 쓴다고 보기 어렵다.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가 이미 충족됐기 때문에 돈이 더 생기면 주식을 사거나 부동산 투자를 한다. 저소득층에게 소득이 추가로 생기면 고소득층보다 한계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에 소비 지출은 훨씬 늘어날 것이다. 저소득층에게 돈을 이전하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 구매가 활발히 이뤄진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소득수준 별로 소비성향이 다르기에 저소득층에게 소득을 이전해 소비 지출을 촉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책이다.

소득주도 성장론,
경제 균형 발전 위해 필요해

포스트 케인즈주의의 바탕이 되는 케인즈는 어떤 입장이었나.
케인즈나 포스트 케인즈주의나 시장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입장은 같다. 자연적인 상태에선 항상 시장실패가 존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역설했다. 케인즈는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에 관해 수요 측면에 주목했다. 총수요란 경제 주체들이 소비와 투자를 위해 구매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총합이다. 수요는 크게 투자와 소비 두 가지로 나뉘는데 포스트 케인즈주의는 소비에 집중한 반면 케인즈는 투자의 역할에 주목했다.

당시 시대상황을 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1910년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2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친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해 주가는 폭락하고 은행과 기업이 우후죽순처럼 파산해 대규모 실업 사태가 일어났다. 케인즈는 대공황을 시장실패가 극대화된 것이라 진단하고 정부가 나서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문했다. 케인즈의 처방에 따른 정책이 ‘뉴딜정책’이다. 뉴딜정책에 따라 미국 정부는 대규모 공적 자원을 투입해 테네시 강에 댐을 건설하는 등 공공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다. 이전에는 총수요를 이루는 소비와 투자가 주로 민간, 즉 기업과 가계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시장의 자율에 맡겼는데 민간이 적절한 소비와 투자를 담당해내지 못하니까 정부가 공공 지출을 통해 수요 진작의 물꼬를 튼 것이다. 케인즈식 처방에 따른 뉴딜정책은 효력을 발휘했다. 경제 순환 구조에서 ‘투자 지출의 증가 → 수요 증가 → 생산 증가 → 임금으로서의 소득 증가’의 선순환 구조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1929년 대공황 이후 미국의 실업률은 약 25%까지 치솟았다.
ⓒFRED 제공
“수요 = 소비 + 투자”

포스트 케인즈주의가 케인즈와 구별되는 점은 무엇인가.
포스트 케인즈주의 또한 경제 문제에 있어 정부가 나서서 총수요를 진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케인즈는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대규모 투자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포스트 케인즈주의는 소비의 역할에 주목했다. 케인즈는 총수요에 있어서 소비의 역할을 간과했다. 당시엔 투자 지출의 증가만으로 수요를 충분히 창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198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수요에 있어 소비 지출이 심각하게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상위 10%, 1% 계층에 소득이 집중되다 보니 중산층은 얇아지고 저소득층은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소비 지출 감소가 총수요 감소로 이어지고 *승수효과로 인해 악순환을 일으켰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소비의 주체인 저소득층, 중산층으로의 소득 이전을 통해 내수가 줄어듦으로써 발생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시장 개입에 반대하는 경제학적 관점에도 불구하고 케인즈가 정부의 개입을 주장한 이유는.
케인즈 이전의 고전 경제학자들은 경제가 자연 상태에서 균형을 이룬다고 가정했다. 균형 상태에서는 총수요와 총공급이 맞아떨어져 적정 수준의 경제 성장이 이뤄지고 원하지 않는 실업이 발생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자기교정 능력을 가지고 있어 가만히 놔두면 자연스럽게 균형 상태로 회귀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시장이 자연히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에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했다.

케인즈는 대공황을 통해 경제가 자연 상태에서 스스로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불가피하게 항상 불균형 상태임을 발견했다. 고전 경제학자들의 말대로 경제가 자연적으로 균형 상태를 유지하면 원하지 않는 실업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대공황만이 아니더라도 원하지 않은 실업은 항상 존재했다. 케인즈는 경제가 언제나 불균형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시장실패 상태에 있음을 진단하고 이는 공급에 비해 실질적인 수요가 부족해서 발생한다고 결론지었다. 케인즈에 따르면 소득은 소비나 저축으로 이어지는데 저축된 자본이 그대로 투자 지출로 이어지지 않아 만성적인 불균형에 시달리게 된다. 총수요는 소비와 투자로 구성되는데, 온전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총수요가 부족해지는 것이다. 시장실패는 이런 불균형 상태를 뜻한다. 저축이 투자 지출로 온전히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케인즈는 저축과 실제 투자 지출 사이의 부족분을 정부가 나서서 메꿔 만성적인 실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것이 ‘유효수요 창출 이론’이다.

소득 불평등은 정부가
직접 해소해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예상되는 파급효과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바탕이 되는 소득주도 성장론의 의도는 좋다.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여 수요를 진작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써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은 다소 부작용이 우려된다. 가장 먼저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큰 타격이 갈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영세 자영업자과 중소기업이다. 이들이 근로자들을 착취하려고 최저임금을 주었던 게 아니라 시장에서 지배력이 거의 없으니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기반으로 사업을 해왔다. 강제적으로 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기업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기업이 없어진다는 것은 그만큼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현실에서 경제는 한 나라 내에서만 한정된 사안이 아니다. 경제는 개방되어 있고 대외적인 경쟁 상태에 놓여있다. 이번 인상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데 실패한 기업이 퇴출될 위험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자영업 비중이 굉장히 높아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임금 인상에 따라 임의로 가격을 올리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은 기본적으로 시장 계약이다. 기업이나 고용주가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노동자들에게 원하지 않는 계약을 강요했다면 그것은 불공정 계약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규제해야 한다. 고용주와 근로자의 불법적인 고용 계약은 철저히 방지해야 하지만 그것이 아닌 사적거래는 자유롭게 허용할 필요가 있다. 대신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누진세제를 통한 저소득층에게 실질적인 현물 지원이 요구된다. 모든 계층이 일정한 수준의 생활을 하고 소비 수요를 일으킬 수 있도록 소득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정부의 직접적인 소득 보전이라는 것이다. 소득 불평등 해소는 기업의 역할이 아닌 직접적인 정부의 역할이다. 강화된 누진세율을 적용하여 고소득층으로부터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저소득층에게 직접 현금으로 분배해야 한다. 실업 급여, 의료지원, 직업교육, 최저 생계비 지원 등의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적 접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과 더불어 보완돼야 할 정책이 있는가.
케인즈식 처방에 따른 투자 지출 진작과 포스트 케인즈주의에 따른 소비 지출 진작을 통한 수요 창출은 모두 경기 선순환에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 성장은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 능력의 증가에 의해 좌우된다. 케인즈나 포스트 케인즈주의 모두 경제의 기본 성장 동력은 공급 능력의 향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앞서 설명한 둘의 수요 조절 정책은 단기적인 경기 변동에 의한 부작용을 해소하는 데 효과가 있다.

공급능력 증가를 위한 기술혁신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 직접적으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공급 능력 조절 정책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공급 능력의 성장은 기업의 영역이다. R&D(Research&Development) 투자 장려, 정당한 범위 내의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보장과 같이 기술혁신을 통한 기업의 공급 능력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동시에 수요 측면에서 이를 따라갈 수 있도록 정부의 개입이 함께 이뤄질 때 효과적인 경제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

기사 도우미

◇승수효과=경제 현상에서 어떤 경제 요인의 변화가 다른 경제 요인의 변화를 가져와 파급 효과를 낳고 최종적으로는 처음 몇 배의 증가 또는 감소로 나타나는 총효과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