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하영 기자 (chy7900@skkuw.com)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
국제법, 강제성ㆍ실효성 없어
환수된 문화재 활용도 적극적으로 이뤄줘야

아직 돌아오지 못한 우리 문화재
지난 8월, 1998년 6월 국내 문화재 밀매단에 의해 일본으로 불법 반출됐던 조선 시대 유물 ‘이선제 묘지(墓誌)’가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일본인 소장자였던 도도로키 구니에씨를 지속적으로 설득한 끝에 문화재를 기증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팀장은 “조선 전기의 문인 이선제의 행적을 보여주는 역사 자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분청사기의 특징인 상감기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높다”고 전했다.

지난 8월 환수된 '이선제 묘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한국국외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4월 1일을 기준으로 일본, 미국, 러시아 등 총 20개국에 약 16만 점의 문화재가 분포돼 있다. 문화재청이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6.25 전쟁과 같은 국가적 혼란기에 반출된 문화재는 약 16만 8000점에 이르지만, 현재까지 반환된 문화재는 전체의 5.9%인 1만 39점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산수화 중 하나로 꼽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비롯해 우리 문화재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국가인 일본은 전체의 42%를 차지하는 7만 1422점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 중 6593점만 환수됐다.

문화재 환수의 현실적인 장애물
김병연 문화재청 국제협력과 직원은 문화재가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유출됐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전했다. 그는 “국가적 혼란기 때 반출된 문화재에 대해서는 실효적인 문서가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다”며 불법 반출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면 환수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우리나라에서 도굴해간 유물 1100여 점을 일컫는 오구라 컬렉션이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일본 정부는 오구라 컬렉션이 불법 반출됐다는 증거가 없다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오구라 컬렉션에는 조선 왕실 유물과 가야 고분 출토 유물뿐만 아니라 그 가치가 높아 일본의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신라금동관모 등 39점이 포함돼 있다. 강 팀장은 “빼앗긴 사람이 행위를 입증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국제적으로 인정될만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문화재의 유출 경로를 바라보는 타국과의 의견 차이도 환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1996년 야마구치여대는 우리나라 경남대와의 자매결연 및 학술 교류 등을 통해 ‘데라우치 문고’를 기증했다. 우리나라는 데라우치 문고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 총독으로 있던 데라우치에 의해 불법 약탈당한 것으로 보아 ‘반환’을 요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불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기증’으로 맞섰다. 결국 기증의 형식으로 마무리된 이 사례는 문화재를 되찾는 것을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다.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는 “마땅히 돌려받아야 하는 문화재를 타국의 선의로 돌려받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환수가 아니다”라며 안타깝다는 심정을 전했다.

부딪치는 국내법, 실효성 없는 국제법
문화재 환수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까. 김 직원은 “협의 과정에서 국가마다 상이한 법률에 따라 주장을 하게 돼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법률에 따르면 문화재가 약탈당한 경우 그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프랑스는 전쟁 당시 반입된 ‘외규장각도서’를 전리품의 일종으로 봐 반환을 거부했다. 프랑스는 당국의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외규장각도서는 공공재산으로 분류돼 양도가 불가능하며, 해외 대여 및 전시 등 유출 행위도 한시적으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2010년 열린 G20 정상회의를 통해 한국과 프랑스 간의 합의가 체결돼 다음해 외규장각도서가 우리나라로 돌아왔으나, 반환이 아닌 5년마다 계약이 갱신되는 대여 형태였다.

국제법 또한 강제성이 없어 효력을 다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가 1982년 5월에 가입한 유네스코의 ‘문화재의 부당한 반출입 및 소유권의 이전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은 도난 및 불법반출 등 불법거래 문화재에 대한 반환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강 팀장은 “국제협약을 각 나라의 국내법에 적용해야 강제성이 생기는데 그런 경우가 드물다”며 결정적으로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국제법은 소급효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협약 발효 이후에 도난되거나 반출된 문화재에 한해서만 적용되는 한계가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나 1636년 병자호란 때 약탈당한 문화재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강 팀장은 “법적으로 해결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 사실상 협상이나 기증과 같은 수단을 통한 환수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실한 문화재 조사·활용도 풀어야 할 과제
문화재를 환수하는 것에만 치중하다 보니 정작 문화재의 진위 조사와 사후 활용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8월, 2015년 미국에서 환수한 덕종 어보가 성종이 죽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1471년 제작한 원본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시대의 재제작품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문화재청이 조사를 통해 재제작품임을 알면서도 실적 올리기에 급급해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에 김종진 문화재청장은 국제적 협력 관계와 환수에 치중한 나머지 기초적인 확인 과정이 부실했다며 절차를 철저히 거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애써 환수한 문화재를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하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해 국립박물관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시 공간 부족의 이유로 국립민속박물관은 소장하고 있는 환수 문화재 중 2.3%만을 전시하고 있었고 국립고궁박물관도 8.2%만을 전시하고 있었다. 가장 많은 환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42.2%를 전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환수받은 문화재가 잘 관리 및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직원은 “2012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설립하여 국외소재문화재의 조사와 함께 환수 문화재 활용 업무도 추진 중”이라며 “법적 해결이 어려운 만큼 지속적인 타협과 협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 덧붙여 문화재 환수에는 국민의 관심도 필수적이라며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