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왕준현 정원 작가

기자명 우성곤 기자 (hlnsg77@skkuw.com)

‘식물이 좋아 영국에서 가든 디자인을 전공한 26살 가든 디자이너입니다’ 생활정원공모전에서 관람객들의 투표로 인기상을 수상한 정원 ‘INNER PEACE’의 왕준현 정원 작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정원의 나라 영국으로 훌쩍 유학을 떠난 그는 4년 후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정원 졸업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국했다. 정원을 디자인하는 것은 물론, 정원 식물들의 라틴어 학명을 외우는 것조차 즐겁다는 왕 작가. 정원과 사랑에 빠진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렸을 때부터 식물도감에 빠져 살던 그가 식물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것은 17살 때부터였다. 그는 책상과 베란다를 화분으로 가득 채울 만큼 식물을 좋아했다. 대학을 진학하는 시기에 읽은 책 한권이 그의 삶의 방향을 바꿨다. 존 브룩스의 『Small Garden』이라는 책을 통해 그는 현대 정원 디자인에 빠지게 됐다. 이것을 계기로 그는 국내 대학 조경학과 진학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정원 유학을 떠나 챔스포드의 리틀대에서 가든 디자인을 공부했다.

왕 작가가 답사를 다녀온 영국 Chatsworth House.
ⓒ왕준현 작가
왕 작가는 영국에서 정원 답사를 다닌 기억을 잊지 못했다. 정원을 보기 위해 다시 영국에 가고 싶을 정도로 그는 영국의 정원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었다. 200년 역사를 가진 정원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영국은 정원이 발달한 나라로 유명하다. ‘영국식 정원’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그는 “영국 정원은 관리가 잘되고 아름다워 비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며 “국가에서 운영하는 ‘왕실 원예 협회’가 왕실 정원을 비롯한 많은 정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원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그가 공부하는 대부분의 정원은 유럽의 정원이다. 유럽은 우리나라와 기후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유럽 정원의 식물을 우리나라의 어떤 식물로 대체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정원을 구상할 때, 그는 우선 사람의 동선과 사물의 배치를 생각한다. 가든 디자인을 전공하여 가장 먼저 배운 것도 공간에 사물을 배치하는 법이다. 왕 작가는 “사물을 배치한 후에 사물이 생각보다 크거나 작은 것을 깨닫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최적의 공간 구성을 위해 사전에 제대로 계획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후에 어떤 식물을 사용하여 어떤 분위기의 정원을 연출할지 구상한다. 그는 “꽃의 색과 모양, 잎의 크기와 무늬를 모두 고려해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식물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가가 그림을 채울 색을 고르고, 시인들이 시에 쓰일 단어를 고민하듯, 정원 작가도 정원에 쓰일 식물을 신중하게 고른다. 다만 화가와 시인이 선택한 색과 단어는 영원히 변하지 않지만, 작가가 고른 식물은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꾼다는 점에서 정원을 만들 때 더 많은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어떤 계절에 어떤 꽃이 피고, 어떤 식물이 자라고, 어떤 잎이 시드는지 미리 알아야 하고 그런 자연의 변화가 정원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도록 조성해야 한다. 그는 무엇보다 관리하기 쉬운 식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왕 작가의 스케치(왼쪽 사진)와 실제 정원.














정원이 아름다운 이유는 계절마다 피는 꽃의 모습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과정도 재미있고, 기다리던 꽃이 피었을 때의 고마움과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정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아직 한국 사회에서 정원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시민들이 정원 가꾸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정원 박람회와 가든쇼에서 다양하고 수준 높은 정원을 많이 접해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고, 시민들이 직접 도심 속 자투리 공간이나 방치된 공원을 정원으로 가꾼다면 정원을 만나기 쉬운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왕 작가는 화분에 담긴 식물을 베란다에 적절히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집안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연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상에 올려놓은 작은 꽃 화분도 하나의 정원이다. 그는 “관심을 가지면 어느 공간이든 정원을 만들 수 있다”며 “조금만 여유를 갖고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어 보는 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그는 다음에 있을 정원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국에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의 정원 문화를 선도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가 앞으로 가꿔 나갈 정원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