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곤 기자 (hlnsg77@skkuw.com)

 ‘…밤낮으로, 매 시간마다 모든 계절과 모든 날씨 속에서 정원과 나는 친밀해 졌다. 그곳에서 자라는 모든 나무의 잎사귀들과 그들의 꽃피고 열매 맺는 모습은 물론, 생성해가고 소멸해가는 모든 과정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삭막한 도시의 시민들에게 정원은 일반 공원이 주지 못하는 밀도 있는 자연과의 교감을 선사한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한 국립수목원의 생활정원공모전이 오는 26일까지 수목원 내 광장에서 열린다. ‘식물아 놀자’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공모전은 생활 속 정원 문화를 확산하고자 7개의 생활정원을 전시하고 있다. 생활정원은 베란다나 건물 옥상, 자투리 공간에 조성하기에 적합한 정원이다. 전시된 정원마다 사용된 식물과 소품, 정원 작가의 의도를 소개한 글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일상 속 한정된 공간에 정원을 들여 놓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정원 'INNER PEACE' 안으로 들어가는 문.

①갈대밭 속 '비밀의 공간'
‘INNER PEACE’는 옥상 정원이다. 작가는 갈대류 식물에 둘러싸인 정원에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비밀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정원은 밖에서 보면 뾰족한 향나무들이 간간이 솟아있는 갈대밭이다. 정원 입구에는 정원 안쪽으로 뻗어있는 디딤목들을 박아놨는데 이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갈대로 가려져 밖에서는 정원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다. 디딤목을 따라 정원 내부로 들어가면 넓은 원형의 목재판이 설치돼 있고 그 밑은 자잘한 나무껍질이 깔려있다. 목재판 위에는 의자가 놓여 있어 정원 내부를 앉아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원 바깥쪽이 잘 보이지 않아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갈대 사이사이에 섞여 있는 핑크뮬리는 마치 공중에 흩뿌린 연분홍색 꽃가루 같다. 작가는 진한 색상의 식물은 피하고 연한 색상의 풀과 꽃으로 정원을 꾸몄다. 갈대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높이가 서로 다른 털수염풀, 억새, 은사초 같은 풀들이 좁은 정원에서도 드넓은 갈대밭에 온 것 같다는 착각을 준다.


 
②아이들과 즐길 수 있는 ‘물’의 정원
‘水&樂 garden’은 한 평 반이 채 안 되는 베란다 정원이다. 보통 나무로 테두리를 두른 다른 정원과 달리 주변을 기와로 둘렀다. 전체적으로 경사가 진 정원을 서로 연결된 기왓장들이 관통하고 있다. 물이 기와를 타고 흐르면 기와 사이에 메꿔 놓은 작은 돌들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 정원을 적신다. 물은 끝까지 흘러 내려가 정원 귀퉁이에 작은 연못을 만든다. 가족이 팀을 이뤄 조성한 이 베란다 정원에서 아이들은 식물에 물 주는 것을 즐거워하게 되고, 자연과 교감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정원에는 어두운 색의 키 작은 풀과 덩굴이 가득 심겼다. 이런 식물 선택은 정원을 전체적으로 어둡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물을 가득 머금은 듯 촉촉한 모습을 연출한다. 보라색, 연분홍색의 백리향은 이러한 어두운 배경과 섞여 오묘한 분위기를 낸다. 기왓장 바로 옆에서 길게 뻗어 나온 적록색 휴케라 잎과 정원 한복판에서 사방으로 쏟아져 나오는 톱풀의 옅은 초록 이파리들은 정원을 울창해 보이게 한다. 정원 한 쪽의 하얀 바늘꽃은 드문드문 어두운 정원을 밝힌다.


 
③‘정원에 세이지를 기르는 자가 어찌 늙을 수 있겠는가’
‘My Enjoy PPT Garden’은 마당이 있는 주택에 있을 법한 마당 정원이다. ‘PPT’는 ‘Play Plant Tea’라는 의미로 작가는 친구들과 직접 만든 차를 함께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정원은 크게 차 마시는 곳과 텃밭으로 나뉘어 있다. 정원 한쪽에 테이블과 차 덖는 화덕, 찻잎을 손질하는 작업대, 찻잎을 말리기 위한 줄을 배치해 차 마시는 정원의 분위기를 더한다. 텃밭 안으로는 식물을 가꿀 수 있는 작은 길을 냈다. 정원에 있는 모든 식물들은 차의 재료가 된다. 꽃잎이 차의 재료로 쓰이는 메리골드와 층꽃풀, 뿌리로 차를 내는 둥글레와 도라지, 열매로 차를 우리는 블루베리 나무와 매실 나무가 길 가장자리에 심겼다. 특히 잎이 무성한 세이지와 라벤더 덤불은 테이블에 앉아서 바로 잎을 딸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했다. 테이블에는 ‘정원에 세이지를 기르는 자가 어찌 늙을 수 있겠는가’라는 유럽 속담이 적혀있다. 차를 마시기 위한 정원이지만 심은 식물들의 색깔이 화사해서 보기에도 아름다운 정원이다.

이외에도 ‘신비한 식물사전’, ‘N.E.S.T’, ‘Refresh Reading Room’, ‘너와 나의 거리 1MM, 가까이서 보니 더 좋네, 너’라는 이름의 생활정원들을 볼 수 있다. 정원을 구상할 때 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식물과 소품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무엇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정원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진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를 통해 작가의 개성이  반영되어 특색 있는 모습의 정원들이 탄생했다. ‘오페라가 종합예술이라면 정원은 꽃과 나무의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이곳에 전시된 정원은 우리가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극대화해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열흘 동안 계속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만의 정원’에 대한 구상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