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병준 편집장 (hbj0929@skkuw.com)

OECD국 중 자살률 1위… 부조리 만연해
카뮈 “부조리 직시하며 끝까지 살아가야”

한 사회의 절망적 풍경에 대한 섬뜩한 비유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이화여대 학생들과 간담회를 하고 나서 “한국은 집단 자살 사회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간담회에서 취직과 결혼, 출산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에 그는 “결혼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성장률과 생산성이 떨어지고 재정이 악화된다”며 “이런 악순환은 집단 자살로 가는 길”이라 말했다고 한다.

‘집단 자살로 가는 길’의 풍경은 개별적 실존들의 자살로 채색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5월 발표한 ‘세계보건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28.4명으로 전 세계 4위다. 1위는 스리랑카(35.3명)로, 리투아니아(32.7명)와 가이아나(29명), 한국이 그 뒤를 이었다. OECD 국가 중에는 1위다. 통계청이 지난 9월 발표한 ‘2016년 사명원인 통계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에 의한 총 사망자 수는 1만3092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하루 평균 자살 사망자가 약 36명인 셈이다. 언론의 자살 소식 보도가 이를 반영한다. 학업 성적을 비관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고3 학생부터, 생계 문제로 지방의 한 숙박업소에서 연탄불을 피워 자살한 남녀, 운영하던 가게가 단속으로 문을 닫자 목  매달아 자살한 청년, 검찰 조사를 받다가 건물 밖으로 뛰어내린 고위직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자살 소식이 TV화면과 신문지면을 메운다. 비보로 채색되는 절망의 풍경이다. 자살의 계절이다.

이 계절을 살며,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니다’라고 느낀 적 있는가. 이 세상의 부조리를 느낀 적이 있느냐는 말이다. 소설 『이방인』의 저자이자 부조리한 세상과 이에 대한 인간의 반항을 탐구한 알베르 카뮈에 따르면, 부조리란 비합리한 세상과 합리에의 욕구를 느끼는 인간 사이의 대결 그 자체다. “비합리와 인간의 향수, 그리고 그 두 가지의 대면에서 솟아나는” 무엇이자 “비합리와, 명확함에 대한 미칠 것 같은 열정의 맞대면”이다. 쉽게 말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나 더 이상 그 의미를 추적할 수 없는 터질 듯한 절망의 상태인 것이다. 집단 자살로 가는 길, ‘악순환’의 구도 속에서 지난해 목을 매고, 연탄에 불을 붙이고, 옥상에서 뛰어내렸던 1만3092명의 그 찰나의 순간, 그들은 적어도 세상에 대한 어떠한 부조리를 느꼈을 것이다. 자살의 계절을 알리는 바람은 인간 내면과 세상이 일구는 부조리의 토양으로부터 불어오는 것이다.

다만 부조리의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당신을 유혹해온다 할지라도, 부디 자살하지 마라. 그렇다고 헛된 희망에 기대지도 마라. 카뮈는 저서 『시지프 신화』에서 우리가 부조리를 마주할 때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말한다. 그중 하나가 자살이다. 다만 자살은 곧 “삶을 감당할 길이 없음을 혹은 삶을 이해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삶을 직시하는 명철한 의식에서 빛의 세계 밖으로의 도피로 인도하는 이 치명적 유희”일 뿐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희망이다. 하지만 희망 역시 “삶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거창한 관념, 삶을 초월하고 그 삶을 승화시키며 삶에 어떤 의미를 주어 결국은 삶을 배반하는 어떤 거창한 관념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속임수일 뿐”이다.

최선의 선택은 반항이다. 반항이란 아무리 부조리한 삶일지라도 자살하거나 헛된 희망에 기대지 않고 그 삶을 직시하며 끝까지 이어 나가는 것이라고 카뮈는 말했다. 신의 저주에 의해 영원히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려야만 하는 신화 속 인물 시지프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고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살아있는 사람들아. “집단 자살 사회”에서 부디 자살하지 말라. 헛된 희망에 기대지도 말라. 단지 이 세상을 직시하며 묵묵히 그리고 끝까지 살아갈 때, 우리는 우리를 옥죄는 모든 것들보다 위대한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바위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