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11~12월은 대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1월은 다음 해에 들어올 학생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난 뒤에 입시가 시작되는 시점이고 12월은 몇 년간 공들여온 학위 논문의 심사가 진행되는 기간이다. 이렇게 보면 11월과 12월은 대학이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여 마무리 짓는 일정이 묘하게 겹쳐있는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입시라면 대학은 당연히 좋은 학생을 선발하려고 하고 학생이라면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할 것이다. 이 주장은 몇 명의 소수에게 한정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통상적으로 좋은 학생은 수능을 비롯하여 고등학교에서 학력의 지표가 높은 학생을 말하고 좋은 대학은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식은 오늘날 4차 산업 혁명이 사회적 의제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여전히 진리로 통용되기보다 많은 문제점을 갖는다.
상식에서 말하는 좋은 대학은 지금 입학하는 학생의 노력이 아니라 과거에 만들어진 제도와 선배들의 성과로 인해 공인된 평가이다. 한 번 좋은 대학이면 영원히 좋은 대학이 되고 반대의 경우도 그러하다. 이러한 평가는 지금의 변화와 노력을 반영할 수 없고 과거의 성과에 안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상식에서 말하는 좋은 학생도 대학 이후의 학력 성취와 도전에 주목하기보다 고교 교과 과정을 통해 이미 획득된 학력에 주목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학이 훌륭한 교과 과정과 탁월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신입생이 대학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측면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를 깡그리 무시할 수 없지만, 신입생이 참여할 수 없었던 과거만으로 현재를 평가한다면 정확하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학생이 다니는 좋은 대학이란 신입생의 대학수학능력이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일 뿐이고 대학에서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는 학교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과거에 알던 지적 오류와 편견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가을의 풍요를 상징하는 말로 즐겨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을 사용한다. 또 독서의 계절로 천고마비를 쓴다. 하지만 천고마비는 원래 추고마비(秋高馬肥)에서 변형된 말이며 오늘날 몽골 지역에 살던 흉노족이 가을에 말이 살찌면 변경으로 약탈을 갈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냈다. 따라서 이 말은 원래 풍요도 독서도 상관없이 약탈을 알리는 신호이자 그 신호로 인해 불안에 떨어야 하는 심경을 나타내다가 정반대의 의미로 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천고마비를 먼저 듣기 때문에 추고마비를 들으면 덮어놓고 틀렸다는 반응을 보이기 쉽다. 대학에서 지적 오류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려면 먼저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심은 더 합리적인 지식을 가지려는 긍정의 활동이지만 불신은 아무것도 믿지 않으려는 부정의 활동이므로 서로 다르다. 내가 보고 듣고 아는 것이 최종의 진리라고 확신하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틀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도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의심을 할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힘으로 지식을 일구고 도전에 나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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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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