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국립국어원 특수언어진흥과 최혜원 과장

기자명 김민주 기자 (ssbx@skkuw.com)

최혜원 과장
특수언어, 체계성 갖춘 독자적 언어
특수언어 연구, 사용자 주도로 이뤄져야

특수언어가 등장한 배경은 무엇인가.
특수언어는 비장애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점자와 수어를 통칭하는 용어다.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지만, 음성언어에 비해 보편적이지 않은 소수의 언어기 때문에 존재 자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농인들이 사용하는 수어는 음성을 사용하지 않는 시각 언어 체계이며 통념적 언어 체계보다 특별한 언어 체계다. 점자는 비장애인이 한글을 음성언어의 기록 체계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시각장애인의 기록 체계다. 음성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농인들이 △공간 △손 △얼굴 표정 △온 몸을 사용해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수어가 탄생했다. 반면 점자는 시각장애인의 문자체계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음성언어를 기록하는 시각적 문자를 촉각을 활용한 점자로 대체하도록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점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가느다란 철사를 글자 모양으로 구부려서 시각장애인들이 이를 만지며 독해하도록 했으나 촉지가 어렵고, 책의 무게가 많이 나가 사용이 힘들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루이 브라이가 군대의 암호 체계를 이용해 여섯 개의 점으로 이뤄진 점자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문자 해독률이 높아졌고 독해 속도도 빨라졌다. 하지만 과거에는 특수언어 사용이 제한적이었고, 현재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언어’라고 하면 비장애인들이 구사하는 언어에 대한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특수언어의 존립이 쉽지 않은 것이다.

특수언어 연구의 진행과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수어 연구 초반에는 수어가 한글보다 열등한 언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어라는 기준에 수어 체계를 맞추려고 했다. 특히 농인들이 교과목을 배우거나 신문을 읽는 등 비교적 심화된 학습을 할 때 음성언어에는 존재하지만 특수언어에는 없는 전문용어가 발견됐다. 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용어를 포함한 다양한 단어들을 만드는 수어사전 연구가 이뤄졌으며 한국어 체계에 맞춰 조사나 어미를 만드는 연구도 다수 진행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어를 독자적 언어로 봐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2010년 이후로는 독자적인 방향의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한편, 점자는 문자 체계다 보니 맞춤법과 같은 규범을 정비하는 것 위주로 연구돼왔다. 시각장애인의 다양한 표기를 위해 △과학점자 △수학점자 △영어점자를 규범화하는 것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됐다. 아직 완벽히 체계화되진 않았지만 국가가 점자 규범을 관리하는 위원회와 같은 조직을 구성해 의견을 나누는 방향의 연구가 지속돼야 한다.

1824년 맹인 루이 브라이에 의해 발명된 점자.
특수언어가 ‘언어’인 이유가 무엇인가.
한 토론회에서 언어는 △분절성 △역사성 △자의성이 있어야 하는데, 수어는 그렇지 않아서 비언어적 수단이라는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수어는 이 세 가지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1960년대에 언어학자 윌리엄 스토키에 의해 수어도 수화소를 비롯한 독자적 문법체계를 가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음성언어의 음소와 대응되는 개념인 수화소가 있고, 모양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수형, 손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수위 등 의미의 최소단위가 존재한다. 수어의 문법이 한국어와 완전히 대응되지 않지만 과거형과 조사 등 문법적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수화들이 있어, 충분히 언어의 분절적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수어는 자연발생적이며 임의적이기 때문에 자의성이 있고, 나름의 역사성도 가진 공식 언어다. 점자는 음성언어를 기록하는 시각장애인의 문자 체계다. 시각장애인의 알파벳인 셈이며 효율화와 약속의 과정을 거쳐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체계가 됐다. 점자는 수어에 비해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규칙들이 규명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변하지 않고, 다른 문자로 충분히 표현해낼 수 있기 때문에 점자가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특수언어의 역할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얼마 전 포항에서 지진으로 인해 그 지역의 학생들을 위해 수능이 연기됐는데, 특수언어는 이러한 조치와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인 장애인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다수가 그들의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의식하는 수고를 하더라도 그들을 위한 언어와 문자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존에 도움을 준다. 현대사회는 동영상이나 사진 등을 ‘보는 문화’가 점점 확대되고 있지만, 시각장애인을 배려하는 텍스트 음성변환 등의 기술은 많이 지원되지 않는다. 이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다양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앞으로 특수언어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연구될 때 가장 효과적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특수 언어는 독자적 언어로 존재함에도 언어 자체에 대한 분석과 같은 체계성이 부족하다. 언어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학습 교재가 특수언어 교육에 사용돼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사용자들이 특수언어에 대해 정확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당장은 특수 언어 사용자들이 연구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효과적 언어 체계와 교육 체계가 정립돼 이들이 주도적으로 연구를 이끌어나가야 한다. 이러한 방향의 발전이 가능하려면 비장애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특수언어 체계 정립을 위해 한글을 점자로 번역하는 점역 등에서는 비장애인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또 외국어에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처럼 특수언어에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배우려는 노력을 기울여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