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물길 화가 겸 여행 작가

기자명 유민지 기자 (alswldb60@skkuw.com)

대부분의 사람은 여행하는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손쉽게 셔터 한 번 누르고 지나갈 시간에 ‘그림’으로 그 순간을 담은 사람이 있다. 화가 김물길 씨다. 그는 대학생 때 여행자금을 스스로 마련해 홀로 세계여행을 떠났다. 여행 시 규칙은 세 가지. 보고 느낀 것을 매일 그리고, 재료는 현지에서 조달하며, 돈은 최대한 아낀다. 세계 각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향기’를 그림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그를 만났다.

ⓒ김물길 작가 제공

어릴 적부터 그림에 흥미가 있었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 말고는 딱히 취미가 없었고, 좋아하는 과목도 없었어요. 초등학교 땐 세일러문, 카드캡터 체리, 천사소녀 네티같은 애니메이션 방영시간을 손꼽아 기다렸고, 그 장면 중 하나를 그리곤 했어요. 그걸 복사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거나 50원씩 받고 팔기도 했고요. 그때는 저만의 스타일이 있다기보다 주로 따라 그리기만 했지만, 부모님은 그것조차 관심 가져주시고 칭찬도 많이 해주셨어요. 그게 저한테 힘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마다가스카르의 무지개를 담은 소녀.
ⓒ김물길 작가 제공
673일간 5대륙 46개국을 여행하며 총 400여 장의 그림을 그렸다. 여행의 기록을 담은 책 『아트로드 : 스물넷에 떠난 컬러풀한 세계 일주』를 펴내기도 했는데, ‘아트로드’란 무엇이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된 건가.
아트로드란 그림을 그리면서 길을 간다는 의미로 제가 만든 단어에요. 대학교 3학년 때 국제봉사단체의 대학생 해외 워크 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어요. 영어 듣기와 말하기가 힘들어 걱정을 많이 하고 갔는데 의외로 문제없이 대화가 되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영어를 시험 점수 잘 받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했지, 해외에서 친구를 사귈 수단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또, 해외에서 낯선 감성으로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면 전보다 비교할 수 없이 작품이 풍성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죠.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여행을 하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여행 경비는 어떻게 모았나.
디자인회사 인턴, 디자인 외주, 아르바이트, 학원 보조강사 등을 통해 2년 반 동안 2500만 원을 모았어요. ‘앞으로 이렇게까지 일을 하는 순간이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힘들었어요. 인턴을 할 때 월급 110만 원을 받았지만, 그래도 돈이 안 모여서 평일에 한 번 정도는 벽화 야간작업도 하고, 디자인 외주를 받기도 해서 거의 일주일 내내 일했어요. 회사에서 까칠하기로 소문났던 팀장님께서 이런 제가 안쓰러웠는지 저를 많이 챙겨주셔서 그나마 회사에서 버틸 수 있었어요.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
시원하게 가보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부모님께 “휴학하고 돈 모아서 여행 갈 거예요”라고 말했을 때 부모님은 “그래, 한번 해봐”라고 말씀하셨어요. 부모님은 ‘돈 모으며 힘들어 봐야 그런 소리 못하지’라는 생각에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제가 돈을 악착같이 모으니 ‘얘가 이러다 진짜 떠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피가 마르셨다고 해요. 떠나기 6개월 전쯤에 다시 얘기했을 때는 허락해주지 않으셨죠. 그래서 부모님을 확실하게 설득하기 위해 이른바 ‘증명 여행’을 떠났어요. 동남아시아나 유럽같이 누구나 갈 수 있는 여행지는 부모님을 설득하기에 어려울 것 같아서 한 달 동안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갔다 왔어요. 집에 안전히 돌아와서 부모님께 자랑하며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아빠는 “네 인생이니까 못 돌아와도 네 운명이다”라고 포기하듯이 말씀하셨죠. 그때는 부모님의 허락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만으로 너무 기뻤어요.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 얼굴을 번지게 표현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아프리카에서 현지 남자들에게 위협을 당했을 때, 로즈메리라는 흑인 아주머니를 만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요. 허름한 판자촌에서 매우 열악하게 사시는 분이었는데 저녁을 차려주셨고, 저를 재워주셔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저 말고도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에, 세인트마리에 가려고 선착장에 있는 동안 막대 초콜릿 여러 개를 사서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나눠 먹었어요. 배에서 내린 후 숙소를 찾을 때 숙박비가 매우 비싸서 망설였는데, 배를 같이 탔던 바네사라는 아주머니가 자신의 집에 머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그리고 “네가 선착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멀리서 봤어. 멀리서도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향기를 맡았지”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느낄 수 있는 거구나’를 깨달았어요. 그 이후로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에게 향기를 느껴보려고 노력하게 되고, 제가 가진 좋은 향기를 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사람에게 느꼈던 따뜻함이나 향기를 얼굴 옆으로 번지게 그리기 시작했어요. 어떤 사람에게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으면 노란색을 쓰기도 하고 산뜻하고 맑은 느낌이 나면 파란색을 쓰기도 하면서 색깔로 그 향기를 표현했어요.

어떻게 현지에서 재료를 조달했나.
완벽하게 원하는 재료를 찾는 건 어려웠지만, 아이들의 스케치북이나 공책, 볼펜 같은 건 쉽게 구할 수 있었어요. 모래나 헤나를 사용하기도 했죠. 쿠바에서는 평면광장이나 골목에 체 게바라 얼굴이 그려져 있었는데, 저 이미지를 어떻게 ‘쿠바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게스트하우스에 배달된 신문을 보고 신문 조각을 뜯어다 붙이며 그의 얼굴을 표현했어요. 생각보다 효과가 괜찮아서 재밌게 작업했고 지금까지 아끼는 작품이에요. 물감은 현지 문방구에서 샀는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물감은 한국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색이 금방 바랬지만, 그게 그 지역의 맛이었어요. 유럽에서부터는 재료가 풍성해지기 시작했고, 색도 훨씬 오래 지속됐죠.

쿠바의 체 게바라
ⓒ김물길 작가 제공

지리성
ⓒ김물길 작가 제공

















매일 그림을 그린다는 규칙을 지키기가 어려웠을 텐데.
여행을 시작한 지 10개월 후쯤, 갑자기 그림 그리기가 너무 싫어져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듯한 좌절감에 빠졌죠. 어렸을 때부터 그림 말고는 잘하는 게 없었고 이거 하나로 살 것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여행 중간에 그림 그리기 싫어지는 그 순간이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아트로드의 규칙을 수정했어요. ‘보고 느낀 것을 매일 그린다’에서 ‘억지로 그리지 않는다’로. 여행하니깐 그림도 반드시 여행하며 느낀 감정만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었던 거에요. 그땐 숙소에 머물거나 동네만 돌아다니며 여행 그림이 아닌, 개인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면서 힘들었던 게 해소됐고, 다시 여행을 다니기 위해 움직이고 싶어지더라고요. 그 후론 꼭 여행 그림이 아니어도 늘 그림과 함께였습니다.

세계여행 후에는 ‘국내 아트로드’를 다녀왔는데, 국내 여행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에는 추억이 있는 곳도 많고 숨은 여행지도 비교적 찾기 쉬웠어요. 엄마의 모교를 방문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저만의 여행지가 생기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긴장의 연속이었던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어디를 가든 편안했다는 게 좋았죠. 제가 낯설지 않은 곳에서도 충분히 작업할 수 있음을 느꼈어요. 전에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외국에 ‘자극’을 찾아갔더라면, 국내 여행을 마친 후에는 굳이 그런 자극이 아니더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여행 후 발견한 사람의 ‘향기’는 무엇인가.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고, 제가 진심으로 다가가면 그 사람들도 나에게 진심으로 대해준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도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게 되더라고요. 엄청 적극적이진 않더라도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남았어요.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제가 전보다는 더 향기로운 사람이 됐다는 거에요. 전에는 감정 기복도 심하고 마음대로 말하기도 했는데 여행 후에는 심적으로 여유도 생기고 더 너그러워졌어요. 지금도 더 향기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고, 평생 그렇게 되길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대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활동만 하는 게 아니라 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게 무엇인지 찾았으면 좋겠어요. 부담이나 책임이 많이 없을 때가 대학생 시절인데, 그때 거침없이 많은 경험을 해야 전공을 떠나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많은 색깔을 써봤지만, 세계여행을 하면서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처음으로 알게 됐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았어요. 비록 상처만 남고 실패했던 경험이라도, 그것만큼 가치 있는 건 없어요. 자기한테 안 맞는 걸 경험해야 맞는 걸 찾을 수 있으니까요. 또, 어떤 일에 결정을 내리기 전에 ‘되는’ 이유가 하나라도 있다면 시도했으면 좋겠어요. 세계여행을 가기 전에, 주변에서 ‘안 되는’ 이유를 많이 들었어요. 위험해서 안 돼, 돈이 없어서 안 돼 등등. 하지만 저는 저만의 되는 이유를 가지고 떠났고 후회하지 않아요. 그래서 주변 사람에게 된다는 얘기를 들으려 에너지를 쏟기보단, 그 시간에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나서 결과를 보여주는 게 훨씬 더 값진 것 같아요. 남의 조언이 아닌 나에게 집중할 때 실패해도 후회 없고, 남 탓하지 않으며 다음 선택을 건강하게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