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시민들 모두가 모여 정치에 대해 토론하고 투표하는 직접민주정이 실시되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을 즐겼고 아테네의 문화는 꽃필 수 있었다. 아테네에서 이러한 자유로운 사색이 가능했던 것은 ‘시민’인 성인 남성들이 정치에 대해 토론하는 동안 노예와 외국인들이 노동을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구글의 ‘알파고’가 바둑으로 인간을 제패하면서 사람들은 AI와 로봇이 일자리를 잠식하는 게 아니냐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4.7%의 응답자들이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생각했다. 세계경제포럼은 ‘일자리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2020년까지 AI의 영향으로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기업에서 생산한 재화를 개인이 소비하면서 유지된다. 개인은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기업은 개인에 임금을 지급한다. 지급된 임금은 재화의 소비를 위해 사용되고, 그렇게 얻어진 이윤은 기업의 새로운 투자를 위해 이용된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이 이 구조를 송두리째 바꾸려고 하고 있다. AI와 로봇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잠식하며 개인들은 소득을 잃고 기업은 소비자를 잃는다. 재고는 쌓여만 가고 기업들은 도산하게 된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다면 이 시나리오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정 시대로 돌아가 보자. 당시 시민들은 노동을 하지 않았다. 노동은 노예와 외국인의 몫이었고, 시민들은 그들이 창출한 부를 나누며 여유로운 삶을 누렸다. 일종의 기본소득이 아테네 시민들에게는 존재했던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문제도 위의 사례로 보면 간단한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다. 로봇과 AI가 창출한 부를 모든 시민에게 기본소득의 형태로 나누면 될 것 아닌가. 노동은 AI와 로봇에게 맡기고 그들이 창출한 부를 시민들이 나눠 가지는 것이다.

유토피아와 같은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이런 시도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닉슨 대통령 시절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주도로 미국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닉슨이 실각하면서 이 논의는 수그러들었지만, 그 시기 미국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상당히 의미 있는 실험 결과들이 나왔다. 이 논의를 재점화한 것은 2013년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의 도입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해 이루어진 서명운동의 성공이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내세웠던,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한다는 기초노령연금제도도 좁은 범위의 기본소득이라고 볼 수 있던 공약이었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해결해야 할 기술적인 문제들도 많고 사회적 공감대 또한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러나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자본주의 패러다임으로 버티기 힘들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과감하지만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 바로 기본소득의 도입이다. 성남시를 비롯한 많은 지자체에서 청년배당과 같은 좁은 의미의 기본소득 실험이 시작되고 있는 지금, 기본소득의 도입을 진지하게 논의해볼 때가 아닐까.

남현석(사과계열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