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채진아 기자 (jina9609@skkuw.com)

올해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시인’ 윤동주가 탄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시인의 작품들은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따뜻한 위로로 새겨지고 있다. 가장 어두웠던 시절, 누구보다 밝은 별처럼 빛난 ‘청년 동주’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 정우택 교수의 자문을 통해 청년 동주의 삶을 되돌아봤다. 시인의 삶을 되돌아보며, 본문에 소개된 여러 작품들을 찾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윤동주의 연희전문 졸업사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을 벗 삼았던 소년
1917년 12월 30일, 만주의 명동촌에서 시인 윤동주가 태어났다. 함경도 북부의 두만강 너머에 있는 만주, 그중에서도 명동촌은 일제강점기 만주 지역의 항일 운동가들이 중심이 돼 만든 민족 운동 및 교육의 본거지였다. 명동촌의 높은 문화적 수준과 교육열은 소년 윤동주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명동소학교 재학 당시 윤동주는 서울에서 발행되던 문학잡지를 구독했고, 같은 반 학우들과 손수 원고를 모아 편집한 <새 명동>이라는 문학잡지를 발간해 동시, 동요 등을 싣기도 했다.

명동촌에서 문학 소년의 꿈을 키우던 윤동주는, 1931년 만주사변 이후 무장단의 출몰이 잦아진 명동을 떠나 북간도의 용정으로 이주했다. 정 교수는 윤동주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북간도의 장소성이 매우 중요한 위상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윤동주의 작품 속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하늘, 바람, 별의 이미지가 만주 지역의 자연환경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 초 직접 용정을 방문하기도 했던 정 교수는 “만주 지역의 벌판은 지리적 특성상 바람이 많이 불고, 밤이 되면 깜깜한 하늘에 별이 가득 차게 된다. 이런 풍경을 벗 삼아 가족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윤동주에게 북간도는 그의 시적 정서와 자의식이 형성된 중요한 장소”라고 말했다.

쉬운 언어로 드러낸 새로운 작품 세계
은진중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당시 용정에 있었던 친일 계통의 광명학원 중학부가 아닌,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에 편입했다. 이 무렵 윤동주는 정지용의 시에 심취해, 쉬운 말로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작품 세계를 펼쳤다. 정 교수는 “윤동주는 정지용 시집을 직접 구입해 자신의 감상을 적어가며 읽기도 했고, 그의 시가 실렸던 신문을 스크랩해서 모으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지용에게 깊은 영감을 받은 윤동주는, 소년 시절을 보낸 북간도의 풍경이 담긴 자연의 언어로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한편 1936년 3월, 숭실중학교는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폐교됐다. 윤동주는 다시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으로 편입했다. 용정으로 돌아온 이후 연희전문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는 동시 쓰기에 매진해 당시 용정의 연길에서 발행되던 월간 잡지 <가톨릭 소년>에 5편의 동시를 발표했다.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소외된 이들의 아픔에 공감했던 시인
쉽고 담담한 언어로 건네는 시대를 향한 위로

슬프고 소외된 존재들을 향한 사랑
1938년 4월 8일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윤동주는 점차 조국의 비극적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정 교수는 “연희전문 재학 당시 직접 목격한 전쟁 동원, 제국주의의 획일성이 윤동주의 시 ‘슬픈 족속’에 잘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시대를 인식하는 윤동주의 작품들은 단순한 감상주의가 아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대면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는 윤동주가 ‘슬픈 족속’을 쓰고 2년 뒤인 1940년 12월 발표한 작품 ‘팔복’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 시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표현이 여덟 번 반복된 뒤 “저들이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정 교수는 이 작품이 현실에 대한 냉소와 비관주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픈 현실을 끝까지 대면하고, 슬퍼하는 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윤동주의 깨달음이 집약돼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의사가 타인의 아픔을 진단하는 사람이라면, 시인은 그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다. 문학도 일종의 제도였기에, 신춘문예 당선 등 문단에서 정식 시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윤동주를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그의 작품 속에 잘 나타나 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윤동주의 시 세계를 ‘마이너리티에 대한 타자 지향성’이라고 해석한다. 윤동주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별 헤는 밤’에 나타난 시어들을 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정 교수는 “윤동주가 별을 보며 부르는 이름들은 가난한 이웃 사람들, 강아지, 비둘기, 어머니, 토끼 등 대체적으로 연약하고 사소한 존재들이다. ‘별 헤는 밤’에서 윤동주는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워하고 함께 하기를 원하는데, 이것이 바로 소수자를 향한 윤동주의 공감과 사랑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라고 분석했다.

자신의 온전함에 대한 부끄러움
‘부끄러움’은 시인 윤동주의 수식어가 될 정도로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정서로 작용한다. 정 교수는 “윤동주 문학에 나타나는 부끄러움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 형성됐다기보다, 개인의 윤리적 심성과 역사 속에서의 실존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정서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동주가 말하는 부끄러움이란 연약하고 사소한 존재들을 소중히 여기고 공감하고자 하는 개인 윤동주의 심성과, 일제 치하의 조선인들이 전쟁에 동원되고 빈곤 속에 살아가는 상황에서 일본 유학을 떠나 문학 활동을 계속하는 자신의 온전함에 대한 반성이 결합된 정서라는 것이다. 1941년 쓴 ‘서시’에는 연약하고 사소한 존재들을 소중히 여기고 공감하는 윤동주의 윤리적 심성이 잘 드러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에는 ‘별 헤는 밤’에 나타난 연약하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공감과 사랑이 나타난다. 1942년 일본 유학을 떠난 뒤 절친한 친구였던 강처중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였다가 이후 발표된 ‘쉽게 쓰여진 시’는 부끄러움의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대목을 통해 조선인의 현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전한 위치에 있는 자신에 대해 반성을 드러냈다.

조선어를 향한 애정과 자의식
윤동주는 1943년 7월 14일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됐다. 정 교수에 따르면 윤동주는 “조선의 현황을 살펴보건대 말도 글도 쓸 수 없게 돼 조선 민족은 바야흐로 멸망하기에 이르렀다”라며 학교에서 조선어 수업이 폐지되고 한글로 된 신문과 잡지들이 폐간되는 것에 크게 분노했다. 일제의 재판 기록에 의하면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은 조선어가 사라지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윤동주가 유학생들과 함께 이에 대해 논하다 발각된 사건이다. 정 교수는 “27년 2개월의 짧은 삶 가운데 20년 8개월을 *디아스포라로 살았던 윤동주에게 조선어는 자신의 종족적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동주의 작품 110여 편 가운데 우리말로 쓰이지 않은 작품은 지금까지 단 한 편도 발견되지 않았다. 디아스포라적 개인으로서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윤동주가 오직 조선어로만 문학 활동을 한 것은 현재까지도 학계 내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는 주제다. 정 교수는 “윤동주에게 있어 조선어는 시를 통해 세상을 표현하고 약자들과 연대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종족적 정체성과 더불어 ‘시인’이라는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타계했다. 식민지 말기, 치안유지법을 개정해 조직 사건이 아닌 명목으로 윤동주를 체포한 일본 경찰과 그가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 형무소는 규슈 대학 의학부의 생체 실험에 복역 중인 조선인들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 교수는 “윤동주의 삶은 한 시대의 청년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며,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힘든 일인지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윤동주의 작품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할 법한 소외와 슬픔을 가장 쉬운 언어로, 담담하고 따뜻하게 위로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기사 도우미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 또는 그 거주지를 가리키는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