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재욱 기자 (wodnr1725@skkuw.com)

청년수당 대상자

 
88년생 A씨는 지방에서 4년제 대학교 컴퓨터과학과를 졸업 후 3D그래픽디자이너로 게임업계에 취업하고자 서울 신림으로 이사와, 고용노동부가 시행하고 있는 취성패를 지원했다. “취업성공패키지를 한다고 취업이 보장된 게 아니에요. 노동부 워크넷에서 추천받았는데 아르바이트 면접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규모도 게임회사라기에는 작았죠.”

게임회사를 희망하는 인력이 넘치다 보니 취성패를 마치고도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생활비도 떨어져 갔다. “지난해 신청을 했었는데 떨어지고, 한 장씩 풀을 붙이는 책 제본 알바를 했어요.” 꿈이 현실이 되길 바랐지만, 현실이 꿈을 쫓기에 여유가 늘 부족했다. “50만 원만 받으면 알바를 안 해도 될 것 같았어요. 그 시간에 다른 걸 할 수 있겠다 싶어 지원했고 될 줄 전혀 몰랐죠.”

청년수당을 받기 전 그에게 미래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학생들의 걱정거리가 취업인데, 그게 잘 안되면 사람이 가라앉게 되죠.” 그는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결국 집에 박혀 *니트족(NEET)이 된다고 전했다. “미취업기간이 길어져도 여유로운 사람이 있을 수 있죠.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생활이 고립되더라고요.”

청년수당은 여유를, 여유는 자신감을 만들었다. “처음에 이 돈을 써도 되는지 의심이 들었어요. 첫 달에는 못 만난 친구들을 만나 여태껏 얻어먹었던 만큼 사줬죠. 사람들을 만나니까 다시 밝아지더라고요.” 돈은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냈다. 청년수당을 통해 구직활동을 위한 추진력을 얻게 된 것이다. “돈을 모으지 않고 쓰다 보니, 더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거죠.”

사회에 지친 청년들을 뒤에서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는 안전망이 존재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세간에는 그런 말이 있죠. 우리들 세금이 너네 밥 먹으라고 주는 거냐고요.” 그는 청년수당이 밥 먹는데 쓰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밥 먹으러 나가면 뭔가를 하잖아요. 서울시가 노린 게 청년들보고 나와서 뭐라도 하라는 거예요. 집에만 있지 말고.”

서울시는 청년수당을 시행하면서 동시에 구직활동 및 사회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일상스케치를 하는 ‘소소한 드로잉’과 영화제작 모임 ‘자취영화’에서 소모임 활동을 했다. “취업 준비하면서 느낀 좌절감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과 동질감을 느꼈고, 같이 작업을 하면서 성취감도 느꼈어요. 현직자 멘토링도 한 번 했었고, 전반적으로 프로그램이 괜찮아요.”

다음해 초까지 미뤄진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주변 사람들에게 공개하고자 한다는 그는 청년수당이 보완해야 할 점도 지적했다. “군대로 인해 구직기간이 늦어지는 남성의 경우와, 소득이 잡히지 않는 개인 프리랜서들이 수혜대상이 되는 문제도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동시에 서울시의 좋은 정책이 많지만 제대로 홍보되지 않고 있으며, 청년들도 자신에게 적합한 정책을 찾아 더 많은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생애 한 번이라 저는 끝났지만 계속해서 청년수당의 저변이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조건이 까다롭지만 신청할 수만 있다면 걱정 말고 신청하세요!” 30살이 넘었지만 그의 한 마디에는 20대의 멋모르는 패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청년배당 대상자

 
성남시 상대원동에 사는 91년생 B씨는 한부모가정에서 태어나 조부모님 손에서 컸다. “17년 만에 떨어져 지냈던 아버지랑 살게 됐지만 너무 안 맞고, 폭행도 당해서 동생이랑 알바를 시작하면서부터 집 나가 살게 됐죠.” 그는 대안학교를 졸업한 후 집에 손 벌리지 않고 사이버 대학을 다니며, 자신과 비슷한 성장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지도하는 인권 활동을 작년까지 했다.

청년배당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내 삶이 엄청 나아졌다고 할 순 없어요. 하지만 시에서 처음으로 혜택을 준 대상이 나였고, 그렇기에 특별하다고 느꼈죠.” 청년배당은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됐다. “평소에 선물을 못 해 드려도 이번에 부모님께 선물을 드릴 수 있었어요. 말은 안 하셨지만 좋아하시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육아를 하는 동생에게도 큰 도움이 됐었죠.”

외롭고 고된 생활을 술로 버티면서 항상 옆에 끼던 안주는 물 한 병과 김 한 봉이었다. “힘들게 인권활동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죠. 다른 친구들 만나서 무얼 하자니 돈이 많이 들어 혼술을 자주 했어요.” 하지만 그는 청년배당으로 성남사랑상품권(이하 상품권)을 받고 생전 가지 않았던 반찬가게를 들리기 시작했다. “시장에 가면 1팩에 3000원 4팩에 1만 원하는 반찬들 사서 건강하게 안주로 먹었어요. 다음날 남은 반찬으로 햇반에 비빔밥도 해 먹었죠.” 그러나 그는 청년들이 상품권을 실속 있게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요새는 가맹점이 많이 늘었지만, 처음에는 옷도 살 수 없었고, 지금도 통신비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상품권으로 월세 납부가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청년배당을 통해 다시 본 성남의 지역별 빈부격차는 그에게 진지한 고민거리다. “수정구, 중원구와 분당구의 길거리만 거닐어도 차이를 느낄 수 있어요. 분당의 상당수 청년은 청년배당을 받지 않아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여기는 그 돈을 고귀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그가 인권활동가로서 빈민이라 부르는 친구들은 청년배당이라는 복지 자체를 모를 정도로 먹고살기 바빠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들다. “일하는 사람이 동사무소 갈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몰라서, 혹은 바빠서 못 받는 친구들의 배당이 어디로 갈까, 그 수도 적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배당이 필요하지 않은 청년이 있다면 시에 자발적 반환을 할 수 있게 증서나 다른 혜택을 제공하고, 청년배당 대상임을 몰라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발생하지 않게 문자발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상품권의 현금화에 대한 우려에는 개의치 않았다. “상품권을 현금화해도 상품권은 성남 밖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역 상권을 살리는 데 지장은 없다고 봐요.” 그는 청년이 월세 낼 돈이 없어 상품권을 현금화했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성이 있을지 되물었다. 청년들의 어려운 현실에서 청년배당으로 무언가를 누릴 수 있다면 방식이 무엇이 중요하냐는 그에게는 절규하는 청춘의 생존의식이 꿈틀대고 있었다.

 
성남시 판교동에 사는 92년생 C씨는 대학에 들어와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바람에 수혜대상에서 제외될 줄 알았으나 어떤 영문에서인지 청년배당을 지급받았다. “대부분 술값으로 썼어요. 친구들 중에 부모님께 드리는 경우도 있던데 저는 50만 원 정도를 인터넷을 통해 팔았죠.” 그는 상품권은 쉽게 현금화할 수 있고 단속이 잘 안 된다고 했다. 또한 그는 상품권을 쓸 수 있는 가맹점이 있기는 했지만 검색에 불편함이 있어 카테고리, 지역별로 최신 맛집 추천 앱처럼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신경을 썼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가맹점도 음식점 위주라 다변화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는 청년배당이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며 수혜대상임에도 없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분당사람으로서 편향된 생각일 수 있지만 내 주변의 친구들은 다 낭비를 한 것 같다”며 100만 원이라는 돈도 분기당 25만 원이 아니라 돈을 계획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달마다 주는 것도 좋겠다고 말했다.

기사 도우미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줄임말로,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