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기점으로 동성애는 우리사회의 큰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과거 동성애를 뒷목에서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마치 AIDS의 원흉인양, 사회의 악인 양 다룬 것에 비하면 미디어에서 동성애의 보도 태도도 동성애자의 인권을 다루는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보도태도는 어느 사회든지 사회 구성원의 10% 정도가 동성애적 경향성을 띄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상당히 긍정적인 변화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왜 유독 동성애만이 소수의 인권으로 주목받고 있느냐는 점이다. 동성애가 인권의 문제라면 왜 다른 소수자 예컨대,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선 그렇게들 관심을 갖지 않는걸 까 하는 물음을 던져본다.
동성애자의 인권문제, 동성애자의 삶의 모습에 대한 미디어의 주목이 늘어나면서 사회 내의 소외된 다른 소수자집단에 대한 주목은 소홀한 채 동성애가 가장 피해를 보는 인권의 주체로 여기고 TV에선 동성애 반대자를 반 인권주의자처럼 여기게 한다. 그럼 동성애자의 권리가 유난히 인권과 관련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풍토는 무엇일까?

이런 미디어 현상이 발생하게 된 주된 원인은 동성애의 문제를 사회엘리트 층에서 엘리트의식에 기반한 호의적 시각이 반영되었고, 또한 미디어가 동성애를 하나의 상업적 측면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동성애가 사람들의 흥미를 끌 주제이고 이에 매체가 인권이라는 말을 매개로 사회 전면으로 동성애를 화재의 대상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동성애 인권문제도 또 다른 소수의 인권인 장애인처럼 엘리트나 미디어가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언제 소리없는 외침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다.

결국 정말 중요한 것은 상업적인 일회성의 관심과 인권운동이 아닌 넓은 시각으로 소수자들의 인권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미디어 역시 지금까지 흥미거리, 하나의 기사거리로 쳐다보던 동성애 문제에서 벗어나 소수인권에 대한 진솔하고 그들의 삶에 우리가 어우러질 수 있도록 조명해주고 도와주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미디어의 희생양인 홍석천이나, 상업미디어의 첨병(?)인 하리수가 아닌 그냥 우리가 따뜻히 손 내밀 수 있는 그들로 말이다.

-come as you are는 동성애자들이 쓰는 은어로 자신과 이야기하자, 있는 그대로 너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연애가 아닌 우리를 있는 그대로 봐 달라는 인권 집회때 쓰는 용어이다.

방성용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석사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