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정치적 목적을 띤 군사전초부대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전근대 한국 역사를 살펴볼 때 외국군 주둔사는 통일신라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 중 국력이 가장 약했던 신라는 당나라라는 외세를 개입시켜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는데 당시 당나라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중심으로 5개의 도독부를 설치, 사실상 식민통치에 들어간다. 당나라군은 677년 한반도에서 완전 철군할 때까지 백제 왕자 부여융을 도독으로 임명, 백제 유민의 저항을 무마시켰다. 또한 당나라군은 민중에 대한 착취도 서슴치 않았다. 예를 들면 웅진도독부에 주둔했던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자신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정림사지 5층 석탑에 글귀를 새겼는데 점령지역에서 인구조사 및 호구를 정리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당나라군의 인구 및 호구 조사는 인간의 노동력과 비옥한 토지, 조세원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웅진도독부의 당나라군 이후 한반도에 주둔했던 외국군은 고려시대의 몽고군이다. 몽고군의 경우는 웅진도독부나 현재 주한미군처럼 항시 주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직접 군대를 파병했든 간접 파견했든 몽고군은 약 1세기간 고려를 간섭하면서 민족의 자주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기간만을 고려한다면 원 간섭기는 한국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동안 이민족의 의지에 의해 우리의 삶이 영향을 받던 시기다.

이후 한반도를 거쳐간 외국군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이다. 당시 일본의 침략으로 전 국토가 황폐해지고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명나라 원병은 분명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명나라 군은 일본의 침략으로 목적으로 온 것만은 아니었다. 순망치한의 원리에 따라 조선을 전장으로 삼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하에 원군을 보냈던 명나라는 처음부터 항전의 의지가 없었다. 당시 조선은 명나라군의 군량을 비롯한 각종 군수품은 전부 조선에서 조달해야 했는데, 그 재정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명나라군의 횡포로 ‘일본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이란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명·청교체기 당시 가도에 주둔했던 명나라 장수 모문룡 역시 당시 조선 왕실 및 일부 지배층과 결탁해 후금과의 전투보다 조선양민을 약탈하는데 열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경기대 이재범(사학) 교수는 “전근대사에 있어 한반도에 주둔했던 외국군은 표면상으로 군사방위를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한반도를 영구히 식민화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며 “결국 한반도에 주둔한 외국군은 시대를 초월해 정치적 목적을 띈 군사전초부대의 공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최진우 기자 huskal@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