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에서 나타나는 성역할의 변화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구매력이 커지면서 TV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 시장은 여성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전통적인 남녀역할의 전도나 여성이 남성의 엉덩이를 살짝 때리며 지나가는 국내 한 카드회사의 광고는 우리에게 전통적 여성의 이미지가 아닌 남성을 압도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급격히 변모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이러한 추세는 TV사극에도 나타난다. <여인천하>와 <명성황후>에서는 여성들이 전면에 부각돼 남성들을 제치고 오히려 전반적인 정치활동을 주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여인천하>는 과거의 사극에서 여인들이 주로 남성에 의존해 간접적으로만 정치에 개입했던 것과는 현저히 다른 모습이다. 과거 여성을 주인공을 등장시킨 사극 <장녹수>나 <장희빈>에서 보이던 간접적인 방식이 아닌 후궁이 조정대신들을 좌지우지하며 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묘사된다. 또한 남성적 야망을 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 난정은 선택받기 보다 선택하는 존재며 능동적으로 자신의 계획을 진행시켜나가는 존재다.

한편 여성들의 역할을 부각시키다 보니 남성들은 어리석거나 독자적인 판단력을 갖추지 못한 인물로 묘사되기까지 한다. <여인천하>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들은 우유부단하며 여성의 지시를 따를 뿐이다. 반면 이러한 면에서 여성지향적 사극 <여인천하>는 <태조왕건>과 대조적이다. 최근 종영된 KBS <태조왕건>은 담당 PD가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이 전형적인 남성성이 강조된 사극이다. <여인천하>와 <태조왕건>에 등장하는 여성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태조왕건>에서 한때 여걸로 적극적 역할을 수행했던 왕건의 둘째 부인 오씨는 과거 <용의 눈물>에서 태종의 왕비 강씨처럼 비극적이진 않지만 점차 그 존재가 수동적이고 희미해진다.

이렇듯 <여인천하>는 기존 사극과는 다른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다. 이와 관련 오은영(신방과 대학원 박사수료)씨는 “기존 사극이 남성성을 강조하다 보니 주 시청자 층인 여성을 소외시켰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인천하>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며 “하지만 표면적으로 나타난 여성의 역할 변화를 섣불리 신장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씨에 따르면 <여인천하>에서 묘사된 여성은 대부분 악녀의 이미지로 부각돼 오히려 여성을 평가절하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오씨는 “여성의 역할이 <태조왕건>의 남성들의 대의명분과 달리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정치적 음모에 치중된 것이 <여인천하>의 한계”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앞으로 더욱 신장 되가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고 <여인천하>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사극이 등장할 것이다.

최진우 기자 huskal@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