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규범적 영향력에 비해 자정능력 갖추지 못해...제동장치 필요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미디어 스포츠를 소비하는 행위가 최근 점점 더 우리의 삶 속으로 편입되면서 스포츠신문의 뉴스가치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그 이유는 스포츠 기사가 단순한 스포츠 경기만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사회규범,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배우게 하는 다면체적인 장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 가치에는 시의성, 저명성, 근접성, 영향성, 인간적 흥미를 가장 큰 틀로 제시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신문의 경우 근접성과 인간적 흥미에 근거한 오락성이 강화되는 양태를 보이고 있다. 신문면의 섹션이 20여가지 이상으로 세분화되는 추세에서 이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스포츠가 사회, 국제, 경제, 비즈니스 면까지 확대되는 전방위형 뉴스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 기사가 근접성, 인간적 흥미, 심층성을 토대로 하여 단순한 경기에 대한 보도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요인과 결합하는 뉴스가치를 가지며 상품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에 비해 속보성과 영상 실감성이 떨어지지만 신문은 스포츠 경기에 뒷이야기, 텔레비전이 다루지 못하는 심층적 분석을 통해 스포츠 기사를 다목적용 소재로 정착시키고 있다.

5개의 스포츠 신문(△일간 스포츠 △스포츠 서울 △스포츠 조선 △스포츠 투데이 △good day)과 섹션화되는 스포츠면은 스포츠 기사가 어떠한 장르보다 경쟁력 있는 전문영역이 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선진국에서도 스포츠 기사의 전문성과 상품성은 점점 강화되고 폭넓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스포츠 저널리즘은 새로운 문화 표현양식이며 오락과 서비스로서 문화 복합체적인 특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명제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스포츠 신문은 스포츠 저널리즘 양식에 충실치 못함을 볼 수 있다. 스포츠 기사는 전문성이 없을 때 선정적이 되고 매너리즘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바로 우리의 스포츠 신문이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스포츠 기사의 상품성이 전문성을 토대로 하여 이루어져야 하는데 선정적 낙관주의, 감상적 선정주의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보도 행위와 문화행위로서의 스포츠 저널리즘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스포츠 신문이 담고 있는 음란, 폭력의 상품화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스포츠 신문은 엄밀한 의미에서 스포츠 신문이 아니라 ‘섹포츠 신문’이라 할 정도로 성적 포즈와 문구, 광고가 함께 하고 있다. 1969년 9월 26일 일간 스포츠가 창간될 때의 모습과 현재 스포츠 신문은 그 형질이 변형되어 있다.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으로써 스포츠의 활성화에 초점을 둔 초기의 스포츠 신문과 달리 80년대부터 창간되기 시작한 새로운 스포츠 신문들은 자본주의 메커니즘으로 작동되는 상품으로서의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품이 비윤리적인 행위에서 나타나는 음란, 폭력성을 매개하고 심지어 선도한다는데 있다. 스포츠가 갖고 있는 페어플레이, 역동성, 신선함보다는 소프트 코어 포르노그라피적인 소프트를 메시지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 신문의 연예 오락면은 저급한 문화를 충실히 담아내고 전파시키는 그릇이다. 오양·백양의 비디오, 성인 방송 광고, 700음성 사서함 광고, 몰래 카메라 등에서 보듯이 스포츠 신문은 성인 전문 신문이지 더 이상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신문의 위상을 벗어나 버렸다.

스포츠 신문이 그려내는 여성상은 왜곡된 성문화를 만들어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스포츠 신문 1면에 등장하는 여성은 절대로 온전하게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성적으로 자극을 줄 수 있는 가슴이 크거나, 성적 편력을 갖고 있는 여성만이 게재되는 특권을 누린다. 또한 연재물이 신문사별로 3∼4편씩 실리고 있는데 청소년에게 극심한 해를 줄 수 있는 선전성, 폭력성, 잔인성이 난무하며 왜곡된 가치를 미화하거나 조장하고 있다. 스포츠 신문은 유력 일간 신문이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개척한 황금의 땅이다. 이들 일간 신문이 갖고 있는 사회 규범적 영향력에 비해 자정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스포츠 신문에 대한 제동 장치가 이제 필요함을 볼 수 있다. 스포츠 기자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 제도의 도입이 또한 필요하다. 여러 민간 단체가 스포츠 신문의 유해성과 관련하여 성명서를 내고 감시활동을 하고 있지만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 근본적인 문제는 언론재벌의 사생아라는 스포츠 신문의 위상에 있는 것이다. 스포츠 신문이 이제 스포츠 저널리즘을 공부해야 할 때다. 현재의 모습은 독자나 신문사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송해룡 신방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