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지역주의 극복의 과제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차종천 사회학과 교수

지금 월드컵의 열풍 가운데에서도 지방선거를 위한 유세가 한창 진행중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대체로 연말에 치러 질 대선의 전초전쯤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번 선거 역시 해묵은 지역주의 싸움판에서 벗어나기란 아예 글렀다는 걸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지난 시절 우리는 지리하게 이어지던 군사독재 속에서 지역주의가 점차 고조되다가 마침내 한 지역의 거점도시가 무참히 능욕되고 마는 사태를 체험하기도 했으며, 문민시대로 접어든 이후에도 향토의 기대주들을 청와대로 올려보내는 경쟁에 대부분 휘말려 들었다고 할 수 있다. 목하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들, 예컨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충청권 표심에 구애하는 것이나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부산시장 후보를 밀어달라고 치성을 들이는 것은 하나 같이 지역주의적 전략에서 나온 행보들에 불과하다. <장자 designtimesp=11438> 잡편에 나오는, 달팽이 뿔에 나라 하나씩을 세우고 각축을 벌렸다는 촉씨(觸氏)와 만씨(蠻氏)의 비유는 무엇보다 우리의 지역주의에 그렇게 잘 들어맞을 수가 없다.
지역주의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지라, 필자가 이 자리를 빌어 새삼 오래 된 선거분석 결과들을 꺼내 보이더라도 용인되리라 믿는다. 일례로, 지난 1987년에 필자는 13대 대선 여론조사 자료를 분석하여 거주지의 주효과와 연령과 학력 사이의 상호작용효과가 유의하다고 설정한 모형이 상대적으로 잘 들어맞는 것을 밝히고, 그 때의 노태우 후보 지지와 기타후보 지지간의 비를 다음과 같은 그래프로 제시한 바 있다. 비록 결과가 당시에 승리한 노후보를 중심으로 정리되기는 했으되, 지역 간 지지율의 현저한 격차는 나름대로 지역주의의 결정력를 생생하게 증언해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또한 기득권 층과 신진세력간의 정치적 입장 차이가 교육 정도에 비례하여 더 크게 벌어진다는 점을 드러내주기도 한다.
또한, 14대 대선 여론조사 자료를 분석하다가, 김대중 지지율이 유권자가 호남출신이라는 것에 의해 완벽하게 결정되며, 단계별 모형선택과정을 통하여 일련의 새로운 변수들이 추가되더라도 전혀 요지부동으로 나타나는데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과에도 불구하고, 14대 대선 직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실시한 유권자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지후보 선택시 고려한 요인이 인물·능력 46.5%, 정치경력 26%, 정책·공약 18.5%의 순서로 나타나고, 출신지역은 단지 3%에 그쳐서 충격적이다. 이 새빨간 거짓말은, 적어도 지역주의에 관한 한, 거의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현실의 한 단면을 드러내준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는 그만큼 뻔뻔하고도 노회한 수준인지 모를 일이다.
물론, 지역주의가 무조건 망국병이고 부정적이기만 한 것이냐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칫 국가통합을 저해하는 수준으로 치닫기 일쑤이고, 민주주의를 파행으로 몰고 갈 정도로 위협적인 지역주의는 분명히 하루 빨리 극복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다.  며칠 전 히딩크호 태극전사들이 월드컵 첫 승을 따내 나라 전체가 붉은 악마가 되다시피 감격스러워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히딩크호의 쾌거는 어디까지나 실력 연마와 결속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사례일 뿐이다. 아무리 공이 둥글다지만, 지역 찾고 뭐 찾고서야 어림도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온 세계가 무한경쟁체제로 치달리면서 심지어 유럽 제국마저 EU와 같은 초국적 체제로의 통합을 통해 가차없이 덩치를 키우는 것을 본다. 사실 우리는 과거 엄청난 전화(戰禍)를 당하고도 그 잿더미 위에서 경제발전을 일구어냈는가 하면,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금 모으기로 국력 결집을 시도한 저력 있는 족속이다. 이제는 더 이상 정치를 지역 패거리들의 이권 분배와 부패 자행의 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