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법규 재개발 자본에 유리하게 돼 철거 이전에 이주단지 조성 선행돼야

기자명 박명호 기자 (freshnblue@skku.edu)

지난 20여년간의 독재 정치 하에서 정부는 전국 곳곳에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원래 있던 주택을 철거하고 고층 아파트를 지었다. 이와 함께 건축물의 노후화로 인한 재건축도 곳곳에서 추진됐다. 하지만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은 전무했다. 세입자들은 철거민으로 전락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20여년이 지난 현재, 철거민들의 인권적 처지는 그 시절의 처지와 비교해봐도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 지금도 많은 세입자들은 자신들의 주거권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나아지는 정도는 상당히 더디다.

그렇다면 철거 문제가 생겨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강제철거로 쫓겨나고 갈 곳이 없어 헤매는 철거민들이 양산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주택 세입자들에게 불리하게 설정된 현행 법규에 이유가 있다. △주거환경 개선사업법 △재개발법 △토지수용법 등의 각종 법률들은 이익만 좇는 재개발 사업자와 건설 자본 및 정부에 유리하게 돼 있다. 이 법규들은 재개발 사업자들과 정부가 공적 명분을 내세워 강제적으로 철거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세입자들은 대책을 요구하지만 사업자들은 폭력을 동원해 강제로 철거를 행하고, 이로 인해 철거민들은 턱없이 적은 보상금을 받거나 이마저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철거민들은 기본적인 인권 자체를 무시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철거민 관련 사회단체들은 법 개정을 위해 여러 각도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철거민 관련 사회 단체들은 주로 강제철거에 항거하여 투쟁하는 측과 강제철거가 일어나는 것을 막고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측으로 나뉘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전국철거민협의회(중앙회장 : 이호승, 이하 : 전철협) 정해식 부회장은 “본 단체에서 전개하는 투쟁은 철거 대상 주민들이 다치지 않고 합당한 보상을 받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며 “상가나 주택의 세입자들은 주택 청약예금을 들지 못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렵다. 그들의 이주에 필요한 만큼의 보상금이나 임대주택을 얻어내는 방향으로 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비해 전국철거민연합(의장 : 남경남, 이하 : 전철연)은 좀 더 과격한 투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강제철거반에 맞서 골리앗을 쌓아 대치하는 등 비타협적인 방식의 투쟁을 보이고 있으며, 철거민 투쟁에 계급적 이해를 적용하고 있다. 가열찬 투쟁으로 인한 희생자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철거민 단체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투쟁 방식은 다르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사항은 비슷하다. 전철협 정 부회장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먼저 철거민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이주단지를 조성한 후에 철거를 진행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그는 “그린벨트 해제 토지 등 값싼 땅에 이주단지를 조성한다면 그리 많은 비용이 들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철거민이 생겨나기 시작한 지 이미 30년이 지났다. 하지만 요즘도 강제철거는 진행되고 있으며,철거된 곳의 세입자들은 철거민이라는 짐을 지고 자신들의 인간적 권리를 빼앗긴다. 그리고 최소한 자신들의 살 곳을 얻기 위해 투쟁하지만 그 투쟁은 지루하다. 철거민들이 그들의 권리를 찾고 희생없이 살아갈 수 있는 날은 아직 멀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