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성폭력 정책 입안 시작 친고죄 폐지, 피해자의 성력 불인정 등 개정 노력 필요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상대방의 의사를 침해해 이뤄지는 모든 성적 접촉은 성폭력에 해당된다. 이것은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은 자기가 내려야 한다는 개인의 자유로운 성적 자기 결정권에 침해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유교 관념에 따른 남존여비의 사상과 성폭력에 무감각한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인해 성폭력 문제가 별다른 대책 없이 사회에 방치돼 왔다. 여성은 가부장제 아래서 남성의 유희 상대의 역할로만 생각됐으며, 정작 성폭력 문제가 발생해도 오히려 여성의 정조와 순결을 앞세우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축소, 은폐돼야 했다.

우리나라 성폭력 정책은 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틀이 잡히기 시작한다. 피해를 당한 여성들에 의한 상대 남성들의 가해가 법정 공방으로 불거지면서 성폭력 문제가 공개화 된 것이다. 이에 여성단체들은 이들 여성들의 구제 운동을 펴면서 성폭력 문제가 개인들 간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서 공동의 대책이 필요함을 알렸고 이러한 시도에 힘입어 지난 94년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됐다. 성폭력 특별법에서는 성폭력이 사회적 문제이며 폭력의 한 종류임을 명시하고 97년, 98년 두 차례의 개정을 통해 △성폭력 범죄의 정의를 기존의 ‘풍속에 관한 죄’또는 ‘정조에 관한 죄’로 규정하던 것을 ‘성폭력에 관한 죄’‘강간과 추행의 죄’로 개칭 △미성년자 성폭력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 △가중처벌 대상친족의 범위를 확대하는 규정 등을 삽입했다. 또한 ‘여성 1366’을 비롯한 48개의 성폭력 상담소 및 보호시설을 설치해 피해자의 보호를 위한 성의를 보였으나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 한국 성폭력 연구소 정유석 인권부장은“우리나라의 경우 성폭력 법안은 마련돼 있지만 아직까지 사회단체의 도움이 없이는 해결이 어려운 실정이다”라며 “그래도 성폭력 신고 건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성폭력 발생 건수가 늘었다기보다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고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성폭력 정책을 입안하는데 있어 현재 몇 가지 쟁점이 되는 사항이 있다. 먼저 성폭력을 성별의 문제뿐만 아니라 권력과 섹슈얼리티가 결합된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행법상에서는 인정되지 않던 성전환자 및 동성간, 남자에 대한 강간 등도 성폭력으로 인정된다. 또한 피해자의 성력(性歷)을 고려할 수 있는가의 여부도 중요한 쟁점인데 이로 인해 과거 피해자의 성적인 행동이 증거로 채택돼 구제 받지 못한 여성이 많았다. 미국에서도 성력(性歷)을 증거로 채택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를 법으로 금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 및 고소권자의 고소 없이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친고죄를 성폭력에 적용하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한 취지는 강간을 당한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피해자가 받을 명예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라고 설명되고 있으나 이것은 성폭력을 폭력이나 범죄로 보지 않는 남성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피해자의 보호는 친고죄를 통해서가 아니라 형사절차상의 개선과 사회 지원체계를 통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부장은 “유아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와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보호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조항이 권고사항일 뿐 처벌이 없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재판 과정에 참여하는 법조인을 비롯해 수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폭력을 성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의 차원을 넘어 범죄이자 사회적인 문제임을 인식해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이은경 기자 lajiel@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