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북한 특수 8군단과 남한 특수요원간의 대치를 소재로 삼은 영화 ‘쉬리’는 남북분단이 가져온 비극을 그려내며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여기서 그려진 북한 특수 8군단은 비인간적이고 혹독한 훈련을 통해 오직 ‘임무’를 위해 길들여진 존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들과 마찬가지로 남한에서도 똑같은 훈련과 임무를 수행하는 북파 공작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철저한 반공교육 아래 자라온 우리에게 아직까지 북파 공작원의 존재는 낯설다. 남파 간첩이 체포되면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으며 국가 안보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지만 정작 북파 공작원의 실체는 방송과 신문 등의 주요 매체에서도 최근에서야 다뤄주기 시작했다.

남한에서 무장 공작원들을 훈련시키고 북파하기 시작한 것은 1968년 김신조 외 간첩 30명이 청와대를 기습했던 ‘김신조 사건’이후부터이다. 정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난 53년 한국전 휴전당시부터 72년 7월 남북공동 성명 때까지 북파된 공작원은 모두 7천여 명이며, 이 가운데 사망자가 3백명, 부상자 2백명, 북한에서 체포된 사람이 1백30명, 행방불명자 4천여 명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 설악동지회 정형택 사무총장은 “이들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저학력층이라 금전적 보상과 제대 후의 취업알선 등의 약속을 믿고, 특수부대쯤으로 알고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라고 말한다. 이렇게 선발된 북파 공작원은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일체의 휴가, 면회, 외박 등의 허용 없이 △사격 △폭파 △살인술, 교살술, 첩보수집 등의 특수 무술 △요인납치와 암살 등의 혹독한 훈련을 반복한다. 이러한 과도하고 비인간적인 훈련의 일상화와 훈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한 구타로 인해 그들은 정신장애와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이들은 제대 후에도 사회 물정을 몰라 사회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계속되는 정부의 ‘사찰’로 인해 진급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정 사무총장은 “아는 사람 중에는 제대 후 군생활에 대해 쓴 일기장이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 경우도 있고, 취중에 인민군가를 불렀다는 이유로 형을 산 경우도 보았다”고 말한다. 국가 기관의 사찰 정도가 얼마나 심한가를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제까지 이들의 실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아 왔다는 것이다. 당시 이들의 활동을 군인으로서가 아닌 민간인의 신분에서 이뤄진 활동으로 간주, 병상일지, 군번 등의 군내역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피해보상을 받으려 해도 증거 불충분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해 국회는 ‘국가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의 개정을 통해 북파 공작원에 대해 법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지만 사망, 부상, 실종을 제외한, 공식적으로 활동이 인정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파 공작원 출신으로 구성된 △설악동지회 △총동지중앙회 △연합회 등은 이들의 인권유린 실태조사를 통해 인권위원회에 법적 제소, 유공자로 인정되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 사무국장은 “우리는 냉전시대의 희생물이다. 남북의 대치 상황에서 우리 존재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라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박탈당한 부분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95년부터 계약직으로 모집하기 시작해 보수에 대한 약속만 지켜졌을 뿐,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이 특수요원이라는 미명 하에 북파 공작원으로 모집돼 비인간적인 훈련을 받고 있다. 국가는 하루빨리 북파 공작원의 명예회복과 함께 이들에 대한 대우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이들의 존재가 사라지도록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돼야 함은 물론이다.

염희진 기자 salthj@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