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노숙인 입주시설을 가다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길을 걷다가 누구나 한번쯤 그들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불을 덮고 이리저리 누워있는 그들, 좁은 지하도 통로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그들, 때로는 돈을 구걸하기도 하는 그들을 우리는 노숙자라고 부른다. 그러한 노숙자를 우리는 과연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혹시 ‘일할 능력도 있는 사람이 왜 저러, ‘공짜로 세상을 살아가려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보지는 않았는가? 눈높이에 맞춰 그들을 바라보기 위해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노숙자 입주시설 ‘서울자유의집’을 찾았다.

노숙인 입주시설, 그곳은...
“‘수용’이라는 말 좀 쓰지 말아주세요” 자유의집에서 기획을 맡고 있는 강구형 씨는 현재 운영중인 총 수용시설의 규모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곳뿐 아니라 다른 모든 노숙자 관련시설에서 노숙자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취지 아래 노숙자를 ‘노숙인’으로 칭하는 한편, ‘수용’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이곳 자유의집은 1999년 1월에 개소했고 현재 6백여명의 노숙인이 입소해, 단일 시설로서는 최대 규모의 노숙인 입주시설이다. IMF사태 이후 실직과 그로 인한 가정파탄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입소해왔다. 이들은 대부분 알콜중독, 노숙 등으로 인한 만성질환에 걸려있으며 연고없는 소외감, 무기력증으로 인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여기서 만난 박아무개 씨(36, 남)도 그러한 경우다. 박씨는 건설 일용직으로 일해왔으나 IMF사태 이후 해고당했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돈 한푼 못 벌어다 주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무작정 집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단다. 지난 2000년 겨울, 인터넷을 통해 자유의집에 정착했고 이듬해 봄 건설현장에 일자리를 구했지만 작년 회사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또 다시 해고돼 자유의집에 재입주했다.

이들을 위해 자유의집 측은 숙식,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상담 및 취업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보건복지부 △광역단체의 대책협의회 △시민단체 등과 협의해 노숙인들의 재활·자활프로그램을 운영 중에 있다.

넘기 힘든 장벽, 편견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 노숙인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차갑고, 지원도 미비하다.
“대부분의 노숙인들이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형편입니다. ‘노숙자’라는 꼬리가 취업에 상당한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서울자유의집 생활지도팀에서 근무중인 정찬회 씨는 노숙인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각을 지적한다. 실제로 입소한 노숙인들 중 극소수만이 정규직으로 취업할 뿐 ‘노숙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대부분 일용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위의 박씨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건설일용직은 상당히 불안정한 직업임에도 왜 이를 고집하느냐는 질문에 “정식직원으로 취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래도 수요가 있는 공사장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혹자는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분명 ‘사회적 편견’이라는 장벽은 이들의 의지만으로 넘기에는 너무나 높아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자유의집은 현재 시설 관리 주체인 서울시가 자유의집 부지 및 건물소유주가 제기한 건물명도(건물을 비우고 남에게 넘겨주는 것을 뜻함) 등 청구소송에서 패소함에 따라 폐쇄위기에 놓여있다. 이전부지와 시설이 마련되는 대로 분산배치 등의 방법을 통해 점차 이동할 계획이지만 부지를 마련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다름아닌 시민들의 지역이기주의 때문이다.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은 공감하면서도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짐’이 돌아오면 철저히 외면하는 그들의 모습이 현재 노숙인들에겐 가장 큰 걸림돌이다.

기자가 자유의 집을 떠나는 순간까지 정씨는 거듭 강조했다.
“체계적 지원을 위해서는 단순한 보호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합니다. 이 분들도 다 과거에 세금 꼬박꼬박 내던 우리 이웃이었습니다. 마땅히 이 분들의 어려움은 우리 모두가 안고 가야 할 과제인 것입니다.”

정부가 고용창출을 부르짖지만 아직 그들에겐 와 닿지 않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노숙인들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마음 속의 ‘편견’이라는 장벽을 깨뜨리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노숙자, 그들도 일하고 싶다.

이상현 기자 leesh82@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