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수배해제와 합법화를 둘러싼 문제들

기자명 박명호 기자 (freshnblue@skku.edu)

지난 1996년 8월 13일, 연세대학교에서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 한총련) 주최로 ‘범청학련 통일대축전’이 열렸다. 이날부터 20일까지 그들은 행사장을 봉쇄한 경찰과 대치하며 격렬히 저항했다. 경찰은 헬리콥터를 통해 최루액을 투하하고 경찰특공대를 투입하는 등 강경진압을 펼쳤고, 학생들 역시 이에 맞서 화염병 등을 이용해 저항했으나 3천여명이 연행되고 행사장이었던 연세대학교 역시 상당한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 이후 한총련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으로 변해갔고, 이어 97년 당시 한양대 학생이던 이석씨가 경찰의 프락치로 오인받고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 이후 한총련은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낙인찍혔다. 그 이후 현재까지 한총련은 이적단체로 분류돼 있는 상태다.

수배자들의 인권침해 심각해
한총련은 93년 출범한 이래 올해로 11기 임원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기수가 바뀔 때마다 모든 임원들이 새로이 교체된다. 한총련에 가입된 각 학교 단대장 이상의 학생들이 모두 대의원으로 선출되는데, 총학생회 임원들이 바뀌면서 한총련을 구성하는 대의원 역시 바뀌며 그 수는 전국적으로 약 3∼4백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그 해 한총련이 정식으로 출범한 이후 모두 수배자 신분으로 전락해 끝을 알 수 없는 도피 생활을 한다. 게다가 이전에 수배 조치가 내려졌던 이들에 대한 해제 없이 다시금 수배 조치가 내려지면서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올해 선출된 대의원들 또한 수배자로 생활해야 할 처지다. 이에 대해 수배해제 모임 대표를 맡고 있으며 현재 7년째 수배자 신분으로 있는 유영업 군은 “지금까지 한총련에 관련된 수배자가 모두 1백65명”이라며 “이들이 수배자로 살아온 기간을 모두 합한다면 몇 사람의 인생을 합쳐놨을 정도의 세월과 맞먹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수배자의 신분으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여러 문제를 안고 살고 있다. 수배 조치가 내려진 학생들은 주로 학생회실 한편에 마련된 생활방에서 기거하게 되는데, 상당히 좁은 공간에서 바깥에 제대로 나가지 못한 채 생활해 건강상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실제로 수배해제 모임에서 활동중인 9명의 수배자들의 경우 사무실이 있는 연세대 학생회관에 마련된 5평, 13평의 좁은 공간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이하 : 보건의료단체연합)에서 지난 3월 9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1백6명의 수배자를 대상으로 한 공개건강검진 결과 전체 응답자의 89%가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이 어려웠다고 답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측은 수배자들이 지속적 관리와 치료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마음대로 가지 못해 병을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언제 잡힐지 모르는 불안감속에 생활하는 탓에 대부분의 수배자들이 잠자는 시간이 충분치 못하고 중간에 한 번 이상 깨는 등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 역시 심각한데, 이에 대해 공개건강검진에 참여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배기영(신경정신과) 씨는 “수배에 따른 긴장과 불안으로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심해져 신경성 위장병과 두통이 오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했다. 또한 유군은 “한 대학의 총학생회장이고 한총련의 대의원이라는 이유로 수배당해 사회에 나설 수 없어 개인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울분을 표한다.

합법화를 둘러싼 공방들
한총련이 합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배 해제는 어찌 보면 임시방편적인 대책일 수 있다. 아직 실정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돼 있는 처지에서 이뤄진 수배 해제로는 계속해서 양산될 한총련 수배자들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한총련 합법화 여부에 관한 논의가 우선시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수주의학생연대(cafe.daum.net/ conservatism) 홈페이지에 샤아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분명히 이적행위를 하고 있는 한총련에 대한 이적규정이 철폐가 된다면 지금도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이제 완전히 사장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며 “국가보안법의 현행 유지가 필요하므로 한총련에 대한 이적 규정 철폐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합법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북한의 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과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한총련은 주체사상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주사파에 불과하며, 이것은 주적인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군은 “한총련을 합법화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인권문제에 대한 하나의 척도”라며 “여러 가지 사상을 용인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개인의 사상을 드러내고 전향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며 있어선 안될 일”이라고 역설한다. 또한 그것은 헌법상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임을 지적했다.

현재 한총련 수배해제 모임에선 오는 15일까지 정부의 반응을 기다린 후 아무런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모든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수배자 가족 등 2∼3백명이 모인 시국농성을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5·18 기념식에서 벌어진 시위 이후 국민적 여론도 조금씩 악화되고 정부도 합법화에 대해 주춤하는 등 한총련의 합법화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과연 한총련 합법화에 관한 논란이 어떤 방향으로 결말이 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