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대학로에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 끝날 것이다.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야외무대에서는 통기타를 든 무명 가수들의 노래가 연신 흘러나오고, 먹이를 쫓아 회색 바다를 이루며 모여드는 비둘기와 나무 아래 모여 앉아 초상화를 그리는 거리의 화가들이 함께 모여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고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작은 공원 안에는 추억의 흔적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추억의 옥외 무대는 거리의 가수들이 찾지 않는 TTL무대로 바뀌어져 있고,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는 앰프 음악소리가 넘치며, 힙합 리듬에 맞춰 춤추는 교복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대학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문화 활동의 주체자로서의 대학생들은 보이지 않고 단지 소비문화의 향유자로서 자리할 뿐이다.

작금의 대학로는 문화의 상업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고급 술집과 커피숍, 음식점들과 각종 브랜드의 패스트푸드점으로 채워지고 있다. 과연 이곳이 과거 대학생들의 문화의 거리, 연극의 거리였는지 그 흔적을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되었다. 90년대 초까지 50여 개 이상이 분포했던 대학로의 소극장들은 하나 둘씩 상권에 넘어가 지금은 20여 개 남짓의 극장만이 남아있다. 이것은 분명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변화된 대학로에서 우리의 정신 문화는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성균관 대학교가 어디에 있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우리는‘대학로에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답하곤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대학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학로가 가지고 있는 양질의 문화 풍토를 인문 사회과학과 문화 예술을 표방하는 성대의 인사캠이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저질 상업주의에 물들어 가는 대학로를 우리는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 좋은 환경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우리는 대학로와 배제되어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들은 과연 대학로와 얼마나 친숙한가. 연극의 거리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극과 친하지 못하다. 대학로에서 성대인은 배제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이유로 앞으로 쓰게 될 글은 대학로 현실을 짚어보고 우리가 할 일을 찾기 위한 글들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과거 대학생이 문화를 이끌어 가는 주체자였다면 왜 지금은 그러하지 못하는지, 대학로의 자리를 성대가 이끌어야할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 마로니에에서 겨우 안식처를 찾았던 성북동 비둘기들이 앰프 소리에 놀라 이곳마저 잃어버리기 전에 말이다.

이재원 기자 ljw-c@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