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희곡‘마녀사냥’은 계속되는 종교전쟁과 기근, 이교도의 침입과 전염병의 만연 등으로 아주 혼란스러운 16∼17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지 못하고 절망만이 가득한 사회 속에서 피지배층은 자신들의 분노를 분출할 수 있는 탈출구를 찾았고, 지배층은 그러한 분노가 자신들에게 향하는 걸 막기 위해 ‘마녀’라는 존재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희곡‘마녀사냥’은 당시 타락과 폭압의 상징인 교회에 대항해 인간애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려는 토마스 뮨처와 그 주변인물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자신이 속한 교단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왔던 뮨처는 어느 날 마녀로 몰려 자신의 방으로 도망쳐온 오틸레를 숨겨주고 그녀의 탈출을 도와준다. 하지만 이 사실이 탄로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원장의 배려로 수도원을 빠져나와 보헤미안 광야에 모여있는 농민세력에 합류하게된다. 그러나 정작 뮨처의 탈출을 도운 원장은 이단심판관 제르맹에 의해 아비뇽으로 압송당하고, 뮨처를 비롯한 농민반란군 또한 제르맹이 이끄는 십자군에 의해 포위 당한다.

‘마녀사냥’을 무대 위에 형상화 할 때 먼저 필요했던 것은 현 사회에 대한 인식이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마녀 사냥이 만연했던 당시와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80년대 민주화 투쟁이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출범으로 우리 사회는 예전에 비해 많이 자유로워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지역감정도 남아 있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빨갱이란 이름을 벗었지만,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밥그릇 챙기기로 치부되고 있으며, 조선일보는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스스로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며 항변하며 또 다른 마녀사냥을 행하고 있다. 마녀사냥은 우리 시대에도 나와 우리의 이웃들을 노리며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마녀사냥’은 무대 위에 형상화되었다. 뮨처가 깨우친 진정한 신의 의미는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신념과 용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한 사람의 영웅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바위에 떨어지는 첫 번째 낙수일 뿐이다. 뮨처는 원장과 예언자, 그리고 다른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들의 희생은 바로 뜨거운 인간애의 고귀한 실천인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마녀사냥’의 형상화 과정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은 제각각이었으나, 우리가 인식하는 사회는 하나였다. 실천방법은 다르지만, 각자의 가슴속에 원하는 사회를 그리며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에게도 우리들의 그러한 이야기가 가슴 속 한 구석에 자리잡길 바란다.

김갑현(경제 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