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위기의 연극. 현재 연극계가 처해있는 열악한 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대두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본논리가 횡행하는 가운데 순수예술인 연극의 존재가치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으며, 작품성은 그 흥행의 정도로 판가름나고 있는 실정이다.

최초로 연극의 위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20년, 영화인 윤백남씨의 「연극과 사회」가 신문지면상에 발표되면서부터이다. 그 당시 윤씨가 지적한 연극계의 문제점은 △창작희곡 부재 △전문 연극인 부족 △극장부재 △제작비의 부족 △연극인들의 시대감각 낙후 등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들이 어느 정도 개선된 지금, 연극이 봉착하게 된 문제점이란 이 외에 또 다른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동안 세상은 급속도로 변해왔고 이러한 흐름은 연극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문화는 점점 다양화되어 가는데 변화에 일찌감치 눈뜨지 못한 연극은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문화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소극장을 찾던 관객의 발걸음은 이제 멀티플렉스로 향한다. 이렇듯 순수예술인 연극은 대중문화로부터 철저히 도외시될 위기에 처해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배우기근현상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돈다. 연극무대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영화계로 진출하게 됨에 따라 연극에 출연할 배우들이 점차 적어진다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연극의 출연 섭외에 선뜻 응낙했을 배우들이 이제는 영화촬영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어 연극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가히 알 만 하다. D극단의 기획팀장 L씨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배우들의 영화진출로 인한 어려움은 기존언론에서 보도되는 것만큼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연극계에서 인정받은 배우들이 영화에서도 흥행의 보증수표가 된다면 연극계의 자부심을 높여주는 일이니까요. 다만 한번 영화에 출연해 많은 돈을 만지게 된 젊은 배우들이 돈이 안 되는 연극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역량 있는 배우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연극을 등한시하게 되면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문화산업 전반에 만연해있는 상업화, 자본화의 바람은 여지없이 연극계에도 불어닥치고 있다. 대학로에 밀집해있는 많은 소극장들의 높은 임대료는 최소한의 자본으로 제작하는 대부분의 순수연극이 설자리를 잃게 만드는데 한 몫 하고 있다. 자본경제논리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소극장 임대업자들이 임대료를 빠른 시일 안에 돌려 받기 위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상업 연극을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이 연극계에는 상업주의가 판을 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금전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갖가지 경제적인 문제들을 내세워 연극의 불황을 소리 높여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연극활성화 운동의 일환인 사랑티켓에 대한 논의 역시 관심의 대상이다. “사랑티켓 제도는 연극공연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관객들에게 연극보기를 장려하는 제도인데, 극단에게는 당장의 가시적인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정부 당국에서는 관객 수 증가 등의 장기적 혜택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D극단 기획팀장 L씨는 사랑티켓에 대해 이렇게 불만을 토로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작품 선별의 문제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좋은 작품, 다시 말해 수준 높은 작품이 제외되는가 하면 소위 연극인들이 ‘벗는 연극’이라 칭하는 질 낮은 연극들은 심사에 통과한다.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아 제작된 공연들 가운데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 드물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확고한 기반 다지기 위해서는 실질적 논의와 고민 절실해

한국연극은 언제까지 텅 빈 객석만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어떻게 이러한 위기를 극복해 연극을 확고한 문화적 기반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앞으로 연극이 현 상황을 극복하고 탄탄대로를 걷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탁상공론이 아닌 실질적인 논의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의 연극지원정책개선과 더불어 앞으로의 인재양성에도 주력해야 한다.

현 연극계는 거의 대부분이 영세한 극단 중심 체제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자체적인 신인양성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후진양성은 그 중요성에 있어 당장의 작품제작, 공연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연극이 본 궤도에 올라 제자리를 찾게 될 때까지 가능성을 키워 나가려면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주역들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현재 연극무대를 TV 나 영화계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젊은 배우들이 많이 있다는 점은 전문적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보다 더 절실하게 만든다.

또한 연극만의 확실한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 각종 흥미있는 TV프로그램과 영화 등에 이미 흠뻑 매료되어버린 관객의 관심을 다시 사로잡으려면 TV 쇼, 영화 등과는 차별적인 연극만의 그 무언가를 만들어야한다. ‘만남의 미학’이라 일컬어지는 연극의 특성을 살려, 극도의 개인주의 시대에 살고있는 현대인들에게 직접적 만남을 전제로 한 깊은 감동을 전해줄 때 비로소 연극은 고도의 예술양식이자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연극평론가 안치운씨의 다음과 같은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연극하기 어려운 지금, 연극인들은 단결해야 하며 연극이라는 커다란 주체의 탑에 모여야 한다. 또한 연극에 대한 반성을 통해 경제적 위기와 연극의 위기가 주는 불안을 진정시키고, 연극행위를 계속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저를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연극이야말로 문화적 소산임을 확신하고, 자신이 그 행동의 전위에 몸담고 있다는 자신감을 더욱 굳게 다지는 일이다”

안민영 기자 zenithamy@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