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올 봄 나는 두 가지 소식을 접했다. 하나는 동전 오기영님의 역사에 관한 책 출간 소식(이미 각 언론매체에서 앞다투어 책의 출생을 축하하며, 삼일절 즈음 되새겨보아야 할 역사, 가야할 길을 생각하라는 강령 같은 논설을 내어놓았다)이고, 다른 하나는 심산 선생님의 일생을 그린 공연 ‘나는 누구냐’ 다. 이러한 소식 앞에서 나는 신채호, 김산의 아리랑, 조정래의 태백산맥, 황석영의 장길산, 리영희 교수의 역사관, 양재혁 교수의 동양사상 및 마르크시즘,  늦봄 문익환 등이 봄볕처럼 내 청춘의 이마 위에 내리 쬐던 대학 시절, 젊은 날의 초상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그 당시 나는 ‘심각한 착각’ 속에 있었다. ‘심산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이고, 나의 역사이다’

우리 대학에서 ‘청년 심산’ 혹은 ‘심산의 얼’을 한번도 듣지 않고 졸업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수 백 번쯤 노래하는 이름이며 민족의 얼, 심산의 역사는 참 맑은 봄 하늘처럼 언제나 가슴 설렘이기 때문이다. 내가 청년 심산이고 싶은 것은 청년 헤겔을, 청년 루카치를 추구하는 것과 상이하다. 내 부모의 삶이 녹녹하게 들어 있는 역사이고, 그래서 봄바람 한 자락 안고, 봄비 한 줄기 적실 때마다 너풀너풀 나비처럼 심금을 울리고 가슴을 일깨우고 머리를 채찍질했던 내 안의 눈들이 그렇게 심각한 착각이었음을 나는 이제야 안다.

내게는 첫 밀레니엄, 새해 벽두부터 우리를 자극했던 박하사탕 맛이 되살아나던 때, JSA 김광석의 노래가 귓전에 낭랑하게 울리던 때,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무력한 누드 위에 기타를 연주하였을 때, CAN의 통통한 몸매에 실려 터프하게 흔들리던 봄을 김윤아가 받아 고요하게 귓불에 속삭일 때, 그 날의 봄은 엄청난 착각이었음을 나는 이제야 안다. 과연 2002년 지금 심산의 역사는 나의 역사인가? 우리는 지금 청년 심산인가?

나에게 세기말 같은 사상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사람이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되새기는 그의 문구가 있다. ‘철학이란, 병 속에 갇힌 파리와 같은 우리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다. ’내게 그것은 Time in a bottle에 눌린 존재 의식이다. 그리고 나는 ‘예술이란, 그렇게 일깨운 의식의 실천’이라고 강단에서, 책에서, 술자리에서 떠들었다.

예술은 의식의 실천적 발현이다. 그래서 나는 예술철학을 연구한다. 자위행위 놀음에 추락한 예술을 극복하며 깊은 의식 위에 선 예술이 그리운 것은 그와 같은 까닭이다. 그리움이 의무적인 기다림이라 하여도 새봄 청년처럼 절실한 것이다. ‘나는 누구냐’에서 그것을 묻는다. 그리고 우리는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비트겐슈타인을 겨냥하여 ‘너는 나다’라 하였듯이 역사 속의 살아있는 의식 심산 선생님을 향해 그가 우리 모두의 자신임을 상기하며 가장 찬란한 봄길, 청춘을 걸어야할 때인 것이다.
참 맑은 봄은 끝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삼청동 그림자 눕는 길 끝에서 나는 오래 전 노래를 상기해 본다. 그리고 여전히 ‘착각’ 속에 있음을 깨닫는다.

‘봄이 오는 캠퍼스 잔디 위에 팔베개를 베고 누워∼ 편지를 쓰네/ 호랑나비 한 마리 풀잎에 앉아 잡으려고 손 내미니 날아가 버렸네/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젊은 나이를 이대로 보낼 수 있나/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꿈 찾아 봄 찾아 나도야 간다∼’

이기만 (예술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