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변화의 흐름을 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대학로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대학로는 이화동에서 혜화로터리에 이르는 1.5Km의 거리이다. 대학로와 우리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왜 문화의 거리가 됐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곳에 녹아있는 50여 년의 세월을 되새김질 해야한다.

1950년 경, 지금의 마로니에 공원 터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이 자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로라는 명칭이 생기게 됐다. 그러나 당시 모습은 문화의 거리와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전쟁이 휩쓸고 간 거리에서 문화는 소수의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특전이었다. 당시의 모습은 문화의 거리라기보다는 명칭 그대로 대학로였다.

5∼60년대에는, 서울대와 성균관대가 함께 어울려 야구대회, 축구대회 등의 경기 및 연합동아리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성균관대 교수가 서울대 강사로, 서울대 교수가 성균관대 강사로 출강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60년대 학번이신 본교의 한 교수님은 “대학로의 중국집이나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토론하며 밤을 새는 일이 허다했다. 그때는 지금의 대학로에서 성대에 이르는 길이 대부분 하숙집이었는데 1백호 가량의 하숙집이 있다고 해서 백호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며 “ 그 시절에는 대학생들도 값이 싸다는 이유로 교복을 입었고 대학로 주변에 헌책방이 즐비해 돈 없는 학생들의 지적 갈증을 해소시켜 줬다”고 지난 시절을 추억했다.

서울대 문리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던 1975년, 대학로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서울대 본관 건물이 지금의 문예회관으로 새출발, 미술회관, 문예극장으로 둘러싸인 이른바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80년 경, 이 지대는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소극장이 밀집된 문화의 거리로 서서히 자리잡게 된다.

1984년 거리명 제정 심의 때, 이 길 부근에 여진·야인들의 사신이 묵었던 북평관이 있었으므로 이 이름을 따 ‘북평로’라 했으나 1985년 다시 조정, 대학로로 정해진다. 같은 해 서울시가 이 지역을 문화예술의 거리로 지정, 주말에는 차 없는 거리를 형성했으나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로 변질, 차 없는 거리제도는 소멸된다.

극단 등의 문화시설이 상권에 밀려 이주, 카페, 술집, 음식점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게 된 90년대. 문화예술의 거리가 하나의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변질된다. 기존의 문예극장과 미술회관, 카페와 술집, 가벼움과 무거움, 상업과 순수가 혼재하는 대학로,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찾아도 찾기 어려운 서점. 지금의 대학로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이상으로 대학로의 50여년 역사를 반추해봤다. 그러나 지금은 그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건 아닌지. 대학로, 문화의 거리는 아직도 유효한 것인가?

김지현 기자 bright39@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