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이제 60여일 앞으로 다가온 2002 한일 월드컵은 ‘21세기 최고의 이벤트’로 주목받고 있다. 온 국민은 한국 축구대표팀의 16강 진출을 기원하고 있고 정부와 관계당국은 경기장 및 숙박·관광시설 등의 구축을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월드컵 유치 확정 당시 월드컵종합조정회의는 대회개최방향을 ‘문화월드컵’으로 규정지었는데 이에 따라 전국 10개 월드컵 개최도시에서는 저마다 분주하게 각종 행사들을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이 표방하는‘문화’개념의 본질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전체 행사를 관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사의 전체적 틀은 5월 이후에나 확정될 것이라 변명하는 문화관광부, 홈페이지와 팜플렛에 행사내용을 제대로 게재하지 않아 정작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문화행사에 대한 홍보조차 제대로 하고있지 못한 월드컵조직위 등 문화월드컵을 향한 구호는 난항을 겪고있는 듯하다.

월드컵조직위와는 별개로 운영되는 10개 도시 문화행사추진위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전통민속놀이, 민속예능경연, 성곽순례, 국제 연극제와 무예전, 테마체험, 합창페스티벌, 판화전시회 등의 각종 행사를 준비하며 본격적인 관광객 유치작전에 돌입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역문화 활성화 노력은 서울올림픽에 비해 양적으로 훨씬 확장됐다는 점만을 놓고 보더라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문화는 관광객 유치를 통한 경제발전의 수단이 아니며 문화발전과 경제발전은 같은 지표로 인식될 수 없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한편 유럽, 남미 등에서 풍물 등의 놀이를 통해 월드컵을 홍보하는 방식으로 활동하고있는 ‘월드컵 문화홍보 사절단’또한 문화월드컵을 위한 노력의 한 방편인데 이 활동은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데 그 충분한 의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이라는 시기에 영합해 일시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역시 경제적인 관점에 입각한 1회용 행사라는 의견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발벗고 나서 문화행사에 적극 매진하는 각 단체들이 순수한 문화적 발전이 아니라 관광사업의 수익에 더 치중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어 문화월드컵을 향한 실질적인 여론수렴 공론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 안성배(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민예총) 정책기획 팀장) 씨는 “문화월드컵과 관련해 열렸던 토론회에서 지난 88 서울 올림픽의 열기가 문화의식으로 승화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는데 만일 이를 답습하게 된다면 문화월드컵은커녕 장기적인 결과 문화식민지화를 초래하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월드컵을 표방하면서 경제논리에 입각한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이질화를 초래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혜택에 있어서도 불평등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경우 문화를 이용해 돈벌이에 급급한 각축장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며 좀더 문화적인 관점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조직위원회와는 별도의 기구로서 존재하는 ‘문화행사추진본부’는 조속히 조직위원회산하의 다른 기구들과 마찬가지로 상설 기구화돼 지속적인 관리와 운영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리하여 월드컵이 끝나면 잊혀지고 말 단기적인 문화계획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역문화의 활성화, 전통문화역량의 홍보 등 초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문화적 인프라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수원경기장이 대회 이후 저렴한 가격에 공공성을 유지하는 시민문화시설로 거듭날 것이라는 발표는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반면, 게임장, 쇼핑몰, 스포츠센터 등의 시설이 들어설 일산의 시민공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시설은 앞으로도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문화발전을 위해 최대한 활용돼야 하며 누군가는 그것을 책임 관리해야 한다. 그렇기에 ‘문화행사추진본부’의 상설기구화는 더욱 절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문화월드컵을 표방하면서도 월드컵을 문화적 발전계기로 삼지 않고, 관광화의 수단,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한 문화월드컵은 허울만 존재하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것이다. 문화예술의 형식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기에 급급했던 지난 서울올림픽과는 달리 성숙한 문화의 내면을 알려줄 수 있는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02 월드컵이 진정한 문화발전의 계기로 거듭날 것을 기대해본다.

안민영 기자 zenithamy@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