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학창시절 한민족의 정서인 ‘한’이 잘 표현된 영화 서편제를 단체 관람한 기억이 있다. 한을 만들기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저항 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한 맺힌 딸. 이 영화는 깊은 감동을 줬으며 한이 우리의 정서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대체 우리민족의 정서가 ‘한’이라는 말은 그 출발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19세기 중엽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 여섯 마당 중 비극적 정서가 드러나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변강쇠전’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결말 부분에 변강쇠가 장승을 땔감으로 사용, 저주받아 죽는 장면만 비극일 뿐 해학과 성적인 묘사가 주를 이룬다.

춘향전도 옥중가의 구성지고 슬픈 구음 때문에 한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결국 해피 엔딩이다. 심청가는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질 때 부르는 노래와 심봉사가 어렵게 심청을 키우는 장면이 한스럽게 표현되지만 결국 심청은 살아나고 심봉사는 눈을 뜬다.

또한 시조나 가사, 향가, 고대 소설에 ‘한’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 존재하나 그 수는 적다. 물론 문학작품에 우리 민족의 모든 정서를 담고 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민족의 주된 정서가 ‘한’이라면 왜 현실을 가장 잘 반영된 문학 작품, 그 중 민중들이 즐겨 듣던 판소리 장르에 한이 주된 정서인 작품이 이다지도 적은 것인지. 대체 우리민족의 주된 정서가 ‘한’이라는 거대 명제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은 근대 일본의 석학이었던 야나기 무네요시로부터 비롯됐다고 한다. 민중의 수공예에 가치를 두는 사상인 민예운동의 창시자이며 1924년에는 경성에 조선 민족 미술관을 만들어 조선의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가 바로 ‘한국 민족의 정서는 한이다’라고 말한 장본인이다. 물론 야나기 무네요시가 살아있을 당시의 한국인들 아니 조선인들의 주된 정서가 ‘한’이었을 수는 있다. 나라와 이름을 빼앗기고 자신이 발붙여 살던 땅을 떠나 먼 이국으로 쫓겨가던 조선 민중들은 한 맺힌 삶을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정서가 ‘한’이라는 말에 모두 편입될 수는 없다. 얼마 전에 난타를 봤다. 사물놀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생활용품을 사용, 오직 타악기만으로 진행되는 공연에서 느낀 것은 바로 ‘신명’이었다. 삼국지 위지에 의하면 부여에서는 추수를 마친 12월에 온 나라의 백성이 동네마다 한데 모여 며칠 동안 노래하고 춤추며 음주를 즐기고, 죄가 가벼운 죄수를 풀어주었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음주가무에 능하고 그것을 즐겼던 낙천적인 민족이 우리 민족이며 그러한 우리 민족의 정서는 앞서 말한 고전 문학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서편제에 잘 표현되어 있는 ‘한’은 분명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정서이다. 그러나 일본의 한 학자가 던진 말 한마디가 아직도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고대로부터 우리민족의 정서를 지배해온 신명이 무시되는 것은 아닌지. 일제 치하 35년 이후 계속 되던 비극적인 현대사는 한스러운 역사였다. 하지만 이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한’이라는 언어 뒤에 숨겨진 일본의 잔재가 가슴을 누른다.

조한얼 (어문2·국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