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 단청 연구가 곽동해 씨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단청에 관한 총서를 집필하고 싶었으나 글 뿐 아니라 단청 삽화를 직접 그려 넣어야 했기에 『한국의 단청』을 출간하기까지 2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한국적 디자인의 원형과 화려한 색채를 지닌 단청. 단청에 대한 오랜 애정과 해박한 지식을 책으로 옮겨 담은 곽동해씨를 만났다.

■ 단청을 낯설어 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을 위해 단청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를 부탁한다
건물에 맞게 옷을 입힌 것이다. 일반적으로 단청은 목조건축에 여러 빛깔로 무늬를 그려 장식하는 것을 뜻하나 조각상, 공예품 등에 그림을 그리고 채색, 장식하는 것 등의 총칭이기도 하다. 붉을 단(丹)과 푸를 청(靑)의 합성어로 상반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동양인의 사상이 깃들어 있다. 단청은 먼 걸음 없이 근거리의 고궁이나 사찰에서, 더 가까이는 우리의 의복이나 인테리어 등 실생활에서도 접할 수 있다. 인지하지 못할 뿐, 우리 곁에서 호흡하는 가까운 존재다.

■ 뛰어난 전통예술이 많은데 그 중 단청에 의미를 두는 이유는
백의민족이라는 순백의 이미지에 묻혀 우리의 화려한 색채문화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잡지 못했었다. 그러나 단청은 일반인들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를 뿜어낸다. 또한 단청에는 민족의 정서가 녹아 있다. 단청의 문양은 민족의 집단적 정서가 상징물로 일반화된 것으로, 단청은 인간의 욕망과 기원을 담는 주술적 대상으로 또는 민족의 정서를 표출하고 전달하는 매개체 구실을 하고 있다.

■ 우리 단청이 중국단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데... 또한 단청은 상류층이 누리던 특권이 아니었는지
낱개 하나하나는 중국에서 건너 왔다해도 조합과정에서 우리만의 독특함이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또한 머리초나 시채문 등 독자적인 우리의 문양이 존재한다. 중국에 영향을 받았으나 우리만의 특색을 갖는다. 안료를 중국에서 고가로 수입했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의 여염집까지 단청이 미치지는 못했다. 비록 단청이 상류계층이 목조건축을 빌어 표현됐으나 그 안에 담긴 것은 상류층과 더불어 백성들 전체에 흐르는 공동된 민족의 정서였다. 또한 다산을 상징하는 석류가 여인들의 의복이나 비녀에 사용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단청의 문양은 삶의 곳곳에 자리 매김하고 있어 상류층만의 특권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 단청을 연구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중국의 단청을 보고 온 사람들이 우리의 단청이 중국의 화려함에 비해 소박하다고 말하곤 한다. 이는 조선시대,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우리나라가 청의 영향력 아래 놓여 궁궐을 화려하게 꾸미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다. 비록 우리의 궁궐단청은 소박하지만 사찰의 단청은 중국에 못지 않게 화려하고 웅장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궁궐의 권위에 적합한 작업이 신속히 이뤄져야한다. 또한 우리 국토 굽이굽이에 펼쳐진 다양하고 우수한 단청을 접해 그 뛰어남을 인식했으면 한다. 한국 색채 문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청, 그 색채나 문양을 의복이나 인테리어, 소품에 활용하는 등 단청에 대한 소극적 보존이 아닌 적극적으로 창조·발전해 나가는 실천이 요청된다.

김지현 기자 bright39@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