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걷는다는 것은 곧 여러 가지 감각을 의미한다. 차를 타고서는 느낄 수 없는 거리의 그림, 바람의 내음, 시야에 보이는 각종 삶의 단편들 그리고 문화의 흔적 이 모든 것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곳. 대학로에서 우리는 오감으로 젊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기도 잠시, 느낌은 우리를 공황으로 몰고 간다. 이제 대학로는 그저 술 마시기 좋은 곳일 뿐이다.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고 나면 시간이 절로 간다. 나의 젊음의 시간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TTL ZONE 이것은 변색된 대학로의 새로운 이름이다. 대학로 상권에 형성돼 있는 TTL ZONE은 젊은이들이 TTL카드만 있으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동통신 회사의 서비스이자 그들이 표방하는 문화 코드이다. 대학로의 유일한 옥외무대인 구 무대를 허물고 새로 만들어진 TTL 스퀘어. SK텔레콤 관계자는 “신세대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문화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상설 야외공연장 TTL스퀘어를 오픈했다”고 밝힌다. 때문에 20년 간 마로니에의 추억을 지켰던 원형의 공연 무대는 현재 사라지고 없으며, 대신 SK에서 만든 세련된 무대가 들어섰다.
그러나 이 공간이 과연 과거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의 무대는 객석보다 낮게 위치해 관객들이 쉽게 무대 아래로 내려와 참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무대였다. 그러나 새로 생긴 무대는 전과 달리 관객이 아래에서 위를 보는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무대와 객석의 다른 재료는 관객들로 하여금 무대에 대한 거리감을 갖게 한다. 무대와 객석의 분리는 시연자와 관람객을 구분 짓게 됐고, 관객은 일방적으로 무대를 바라볼 수밖에 없어 정서적 거리감마저 생기게 됐다. 이 같은 구조는 일방적 문화전달이라는 대중 문화적 성향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관객은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무대 위를 쳐다만 볼 수밖에 없게 됐다. 확충된 음향시설로 무대 위의 앰프 소리가 마로니에를 메아리 친다. 그 때문인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건 문화가 아니다. 문화를 강요하기 위해서 다른 문화를 파괴하는 행위다”라며 대체된 무대에서 받은 허탈함을 토로하는 통기타 가수 윤희중 씨. 동시에 무대 상단 중앙에 새겨진 TTL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문화를 표방한 TTL 스퀘어의 의도가 결국 상품광고로써 이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상업적이고 편향적인 문화의 확산과, 기존의 자유로운 공원 문화(통기타, 초상화, 퍼포먼스 등)는 물과 기름처럼 어우러질 수 없는 것일까? 본교에는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대학로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미술학과 학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학점의 경쟁은 이제 그들에게 그런 낭만과 자유를 앗아갔다. 이원희(서양미술 3) 군은 “대학로에 대학생은 없다. 과거와 달리 대학생은 문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 추억일 뿐이다”고 말한다.
이재원기자 ljw-c@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