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유희란 조선시대 성균관의 유생들이 연례적으로 여름과 겨울에 시행한 시대 풍자극이다. 유생들은 유희를 통해 심정을 한번씩 풀어보기도 하고, 정치적 비리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풍자했다. 그들의 비판은 위정자들을 각성시켜 정부에서 시정한 사례도 있었다. 유학정신의 맥을 잇고 있는 우리 양현재에서는 1985년부터 되살려 건학기념일에 즈음하여 금잔디 광장에서 유희를 설연한다. 문화부에서는 유희를 통해 우리 학교와 학생들이 지향해야할 전통 문화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다.

‘박제’이기를 거부하는 양현재

‘양현(養賢)’, 어진 현자를 양성한다. 1395년 조선 초기부터 구한말까지 수많은 유생이 머물며 유학을 공부했던 양현재(사적 143호)는 일제시대 성균관이 경학원으로 격하되면서 문을 닫는 수난을 겪었다. 이후 양현재는 성균관대가 설립되면서 1960년 부활해 총장 직속기관으로 재출발하였다. 그러기도 잠시, 1970년 문화재 관리국이 문화재 보호법을 근거로 하여 학생들의 기숙을 금지시킨다.

1989년에 유학대학 교수들과 학생들이 동, 서재에 기숙생활을 하는 양현재의 원래의 모습을 찾기 위한 노력 끝에 지금은 성균관대 동양학부 및 대학원 장학생 40여 명의 기숙사로 쓰이고 있다. 박제될 뻔한 양현재는 그렇게 우리의 힘으로 되살렸다. 그리고 이제  604년 성균관의 전통의 맥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600년의 역사만 되뇌고 있을 것인가

604년의 전통은 외부에게는 명실 상부한 명예와 권위의 상징이다. 하지만 전통이 결코 현재를 위한 상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 때 과거를 치르던 비천당 앞을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광역화 신입생 모집으로 인해 완전히 배제된 유학·동양학부의 어려움이 보여주는 현재의 모습은 604년의 명예를 말하기에 어딘가 어색하다. 우리가 캠퍼스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느낄 수 있는 전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타고르는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이 바로 동방의 등불 코리아」라고 했다. 그것이 시작되는 곳, 성균관이기를 바란다.

통렬한 비판, 유희

양현재 재생들은 매년 석전과 유희, 탁본전시회, 율곡제 참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유희는 양현재에서 가장 굵은 행사이다. 과거 유희는 현실 정치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임금과 대신들이 도마 위에 오른다. 가차없이 책임을 추궁하다 보면 때론 형벌을 논했고, 그 결과 사형도 집행됐다고 전해진다. 어떤 때는 임금이 참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실제 임금 앞에서 말이다. 성균관의 유생이었던 퇴계, 율곡, 다산 등은 모두 유희를 참여했고, 조광조는 유희에 참여해 왕과 신료들 사이의 소비적 공방을 풍자했음이 기록에 남아 있다.

이후 70∼80년대 유희가 보여주었던 군사 정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은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었다며 양현재 재감 김동민씨는 그때를 회고한다.

유희에 바란다

과거부터 이어 온 것을 무턱대고 모두 전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거에서 이어온 것을 객관화하고 이를 비판, 수용하는 태도가 수반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문화창조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것만이 진정한 우리의 전통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대성전에 모셔놓은 공자를 위시한 중국 성인의 위패를 내리고, 우리 학자들의 위패를 올린 심산이 보여준 혁신적 행동은 성균관이 가야할 길을 제시한다. 재생들은 유희를 단순히 과거를 계승한다는 것에 의미를 한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유희는 정칟경제·환경 등 다방면을 망라한 현실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허나 그것이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만 끝날 것인지, 과연 대학생으로서의 다른 생각이 담겨 있는지 생각해 본다. 흥미 위주의 소재를 다루는 연극은 대학로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학우들은 유가의 관점으로 해석된 날카로운 비판을 기대한다. 성균관대학에서 양현재는 우리 대학이 추구하는 전통문화와 첨단의 조화에서 전통부분을 이끌어갈 의무를 지니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체 학우의 목소리를 대표해 담을 수 있는 유희가 되길 바란다.

현재 인사캠에서만 1회 공연으로 그치는 체제는 부족하다. 양현재의 더 많은 수고를 요할지라도, 자과캠에서도 시연해야할 책임이 있음은 당연하다. 이런 양현재 내부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학교는 그들에게 더 큰 힘을 실어줄 때이다. 성균관 학생들의 양현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재원 기자 ljw-c@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