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편지의 ‘지’는 한자로 종이(紙)를 뜻한다. 종이에 전달하는 소식이다. 그러나 성질이 다른 두 단어가 결합된 ‘영상편지’란 말이 일상생활에서 그 의미가 매우 자연스럽게 통하는 만큼 편지의 본래적 의미가 무색해지고 있다. 또한 휴대폰, 인터넷에서 파생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되면서 의사소통 매체로서의 편지는 점차 잊혀져 가고 있다. 그리고 우편함에는 언제부터인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세금 용지와 광고물로 가득하다. 그러나 편지에 얽힌 우리들의 기억은 모두에게 비슷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우리가 간과하는, 또는 외면했던 편지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 그리고 타인과의 진지한 대화
본교 학생생활연구소의 의뢰현황을 보면 진로, 성격 등 특정 문제에 대한 검사를 필요로 하는 경우보다 종합적인 상담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김금미 연구원은 “학생들이 소외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진 않지만 종합적인 상담으로 이어질 때 대인관계와 관련한 문제가 상당부분 언급된다”며 많은 학생들이 느끼는 정서적 결핍을 전했다. 이어 김 연구원은 편지의 의미에 대해 “특히 종이에 글로 써본다는 것은 시간을 담고 마음을 담는 행위”라며 편지가 인간이 느끼는 소외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매우 긍정적인 소통의 양식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한 편지는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양식은 타인을 바라보고 있지만 가만히 그 글들을 살펴보면 자신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타자와의 대화 이전에 자신과 먼저 대화가 이뤄진다.

예절문학, 편지
지난 99년 4월 3일 정보통신부 장관의 허가를 받은 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은 초기에 윤석중 선생을 회장으로 몇몇의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동호회 성격으로 시작했다. 한국편지가족의 유금준 회장은 편지의 의미를 자신의 가족의 일화를 소개하며 대신한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직접 언성을 높혀 나무란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편지를 통해 아이와 대화를 하곤 했지요”라며 이제 남부럽지 않게 자란 자식들을 은근히 자랑한다. 편지를 쓰며 자식을 가르친 수기를 써서 어느 공모전에 대상을 타기도 했단다.
편지가 형식을 갖춘‘예절문학’이라고 강조하는 유 회장은 편지쓰기가 ‘오늘을 위한 공부’가 아님을 강조한다.

성금보다 더한 위로
‘한울타리’라는 편지동호회는 지난 98년 결성돼 현재 전국에 걸쳐 약 3천여 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 이 동호회는 편지를 주변 사람과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각을 넓혀 백혈병 환자에게 위문편지를 보내고 있다. 운영자 박지혜 양의 제안으로 시작한 이 운동은 성금이나 헌혈증과는 또다른 의미로 환자들에게 잔잔한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한울타리의 움직임을 안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에서도 백혈병 환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며 그들의 행보를 눈여겨보았다.
“편지를 받은 후에도 봉투를 뜯기 전까지, 그리고 답장을 보내고 다시 기다리는 그 기간의 모든 설레임을 즐긴다”는 백 양은 “사회적인 일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어 의미가 깊다”고 말한다.

편지만의 낭만
휴대폰, 컴퓨터를 통한 메시지 교환, 메신저, 이메일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시간 의사소통 수단이란 점이 공통점이며 가장 큰 매력이다. 그래서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의 카타르시스가 더욱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편지는 좀 더 오랜 시간의 의미가 첨가된다. 편지는 극장을 찾는 관객처럼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영화를 보기 위해 줄을 서고 팝콘을 사고 기다리는 일련의 행위들이 모두 ‘영화 보러 간다’는 말에 포함된 것이듯 우체통에서 받아보게 되는 편지도 그러한 행동의 모음, 즉 편지지를 사고 몇 번 씩 종이를 구기며 다시 적고 우표를 사서 붙이고 다시 우체통으로 향하는 발걸음까지 포함된 것이다. 따라서 받는 사람의 기쁨은 남다르게 된다.

이메일, 제목이 있는 편지
이메일에는 일반 편지 양식에는 없는 ‘제목’난이 있다. 제목 달기의 고민스러움은 이메일을 사용한 사람이라면 한 두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더구나 스팸메일이 가득한 요즘엔 행여 처음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낼 때면 더욱 제목에 신경이 쓰인다.
‘∼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는 오로지 대상만을 생각하며 생각에 골몰한다. 그러나 구색부터 갖추기를 강요하는 이메일의 시작은 조금 그럴듯한 내용을 담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난감하게 다가온다. 이는 빠르게 작성할 수 있는 이메일의 장점이 그 시점에서 반감되기 때문에 느끼는 부담이다.

보내기에 간편한 인스턴트 메시지는 읽기에도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양식이 아니라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편리함만을 추구하게 되다보면 어느새 그 마음조차 그릇에 따라가게 된다. 어린 시절 내 눈을 잡았던 화려하게 꾸며진 편지지도 좋지만 하얀 백지에 줄이 그어진 무제 편지지 한 뭉치에서 그 동안 간과하고 모른 척 했던 ‘자신’을 발견해 보자.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마음을 담은 따뜻한 편지 한 통을 건네어 보길.
심연주 기자
rmfnxjrl@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