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인문학의 위기
요즈음 ‘인문학의 위기’라는 화두는 비단 대학에서뿐만 아니라 언론과 문단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주제다. 현재 정통 인문학 강좌는 이제 마지막 보루라 할 대학에서조차 고사 직전에 처해 있고 학생들은 인문학 전공을 기피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작년 호서대 철학과 폐지 논란은 인문학계에 위기감을 한층 고조시켰다.

또한 본교의 지난 01학번의 전공선택 현황을 보면 취업이 유망한 인기학과에만 학생들이 대거 몰리고 철학과를 비롯한 기타 인문학과에는 전공 지망이 소수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올해 영문과를 지원한 정태완(어문2·영문)군은 “대학생이 되면 사학을 전공으로 선택해 공부해보고 싶었지만 취업이 어렵다는 말에 영문과를 지원했다”며 “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이렇듯 본교에서도 지난 96년도 학부제 실시 이후 인문학 위기가 표면상 드러났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오늘날 한국 인문학이 당면한 위기상황을 해결하고 인문학 고유의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재 인문학 위기를 발생시킨 여건들을 고찰, 그에 따른 정책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시급하다.

인문학의 존재의의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우리 자신, 우리의 문화와 역사, 문학과 사상 등을 어우르는 종합적이고 통일적인 인식틀을 만드는 학문이다. 또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여 삶의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이와 관련 본교 이좌용(철학) 교수는 “인문학은 상상력과 논리의 토대가 된다”며 “인문학이 흔들리면 모든 학문이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이 쇠퇴하면 사회의 규범적 토대가 허술해지고 창조적 능력저하, 학문의 종속성 심화 등의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인문학이 ‘소용없는’ 학문처럼 보일지라도 계속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인문학 위기 원인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개혁은 신자유주의 시장논리에 근거하여 학문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학문분야를 퇴출시키려 하고있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데다 그 결과물도 가시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 홀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광운대 고명철(국문) 겸임교수는 “대학이 지식상품을 진열하듯 학문성과를 보여주는 백화점식 경영태도에 문제가 있다”며 사회의 실용주의적 학풍을 우려했다.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학부제 운영은 그 동안 대학들이 유사한 학과들을 개설하여 방만하게 운영해왔던 것을 통폐합해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고 또한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전공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문제는 학문간의 특성이나 한국의 대학 현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학부제를 무리하게 운영하려고 하는 데에 있다.

예컨대 문헌정보학과는 본교에서 인문학부에 소속돼있으나 이화여대는 사회과학대학에 소속돼있다. 이에 대해 본교 권기원(문헌정보학) 교수는 “문헌정보학은 종합적인 학문영역으로 학부에 통합시키기 보다 단독계열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렇듯 학부제를 무리하게 적용시켜 학문의 본질을 흐리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한다.

인문학 위기, 어떻게 극복할까
인문학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이미 시작됐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달 22일 기초학문 육성사업비 1천 2백 12억원을 투입해 석·박사급 연구인력 약 4천명이 연구비를 지원받도록 예산을 책정했다. 또한 학부제 하에서 기초학문의 고사를 막기 위한 대학별 교양교육과정 개편방안 개발이나 학문분야별 또는 학문간 연계 교육과정 운영 방안 개발 등을 위해 6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지원금이 확대되는 것만으로는 지금껏 거론된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다. 보다 근본적으로 인문학 연구기반 확충, 인문학의 사회적 효용을 증대시키기 위한 방안 등 단기적·장기적인 접근을 모색해 그 활로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인문학 전공자가 줄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므로, “대학이 기초적 인문교양 교육을 확실히 해야한다”고 고교수는 강조한다.

한편 인문대학 자체의 새로운 의지로 기존의 종속적인 학문풍토를 개선,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인문학도 발빠르게 대응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나타내는 징후들은 실은 인문학이 활력을 되찾는 과정에서 나오는 현상들일지도 모른다. 인문학이 위기를 넘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조은정 기자 ejcho@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