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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의 횡포
(대산 출판사, 12000원)
데이비드 보일 지음. 이종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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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한 일간지가 정숙한 여성을 창녀라고 비방해 발생한 소송 사건에서 법정은 60만 파운드의 손해 배상 판결을 내렸다. 과연 그 여성이 받은 모욕을 액수로 환산할 수 있을까? 한 학기동안 공부한 노력의 결실이나 사람의 지능, 인간의 행복 등이 과연 숫자로 측정될 수 있을까?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어른들은 숫자를 사랑한다. 당신이 그들에게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고 말하면 그들은 본질적인 것은 물어 보지 않는다. “그애의 목소리는 어떠니? 그애는 어떤 놀이를 가장 좋아하니?” 하고 물어보지 않는다. 그 대신 “그애는 몇 살이니? 몸무게는? 그애의 아버지는 돈을 얼마나 버니?” 하고 물어본다. 이런 숫자를 알고 있어야만 그들은 그애에 대해서 뭔가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구절만큼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지적한 것은 없을 것 같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일상에 걸쳐 공공 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숫자 헤아리기’를 강요받는다. 아무리 급한 문제라도 충분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판단을 유보하는 정치가들이나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을 온갖 통계수치를 동원해 입증하려는 사회과학자들이 바로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멀리 돌아보지 않더라도 휴대폰, 집, 사무실의 전화번호와 갖가지 숫자에 억눌려 살아가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자연에 ‘숫자’라는 질서를 부여했던 영국의 다섯 인물의 삶을 추적함과 동시에 숫자 측정의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더듬어 가는 구조로 이러한 인간과 사회의 계산성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홀로코스트의 전체적인 의미가 희생자 6백만 명이라는 숫자 속에 실종돼 버리듯이 숫자란 것은 결국 뭔가를 죽여버리는 비정함과 사물을 소외시키는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제 우리는 숫자화된 사회에서 벗어나 인간과 사물의 의미 자체를 중요시하는 사회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사물의 본질은 결코 수로 매겨질 수 없는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숫자를 피해 생활의 풍요로움과 삶의 신비를 느끼고 싶다면 숫자로 빼곡이 채워져 있는 회계학, 수학, 물리 책은 잠시동안 덮어두고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염희진 기자 salthj@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