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역사책은 딱딱했고, 무거웠고, 지루했다. 여전히 그렇다. 그러나 현대 역사학은 역사책이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바로 그 증거이다. 미리 말해 두거니와 이 책이 가볍고 재미있다고 선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읽는 사람의 취향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림없는 사실은 이 책이 ‘전형적인’ 따라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종류의 역사책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우선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역사적(=중요한) 사건을 다룬 책이 아니다. 대신 16세기 남부 프랑스에서 벌어진 엽기적(=사소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멀쩡한 여자가 3년 동안 가짜 남편과 속아 살았다는 사건이니 어찌 엽기적이라 하지 않겠는가.  
둘째, 사람들은 역사책 하면 증거에 바탕을 둔 진실로서, 따라서 상상이나 가설의 흔적이 조금도 보여서는 안 되는 줄 안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이 책의 내용이 상당 부분 자신의 상상력의 산물임을 태연히 밝힌다. 그렇다고 이 책을 역사 소설로 혼동하거나 요즘 역사가들은 진실 추구를 포기한 줄로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데이비스는 역사해석 역시 상상에 바탕을 두되 다만 그 상상을 증거로 검증해야 함을 실천한 사람이다.  
끝으로 이 책을 보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중세=기독교, 르네상스=인본주의라는 도식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사람이 종교적인 동시에 세속적이고, 권력에 굴복하는 동시에 그것에 끝까지 저항하고, 합리적인 동시에 비이성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중고등학교 때 달달 외운 연대표와 실제 역사 사이에 벌어져있는 엄청난 간극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건에 치여 인간은 매몰된 그런 역사에 식상한 사람들, 대신 실제로 과거를 살아간 이들의 살내음이 그리운, 그런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백종률(사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