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과캠 만남 - 김정하(기공 81) 동문

기자명 지웅배 기자 (sedation123@naver.com)

 

 

  요즘 TV를 틀어보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광고가 있다. ‘자율주행차량’ 광고이다. 자동차 산업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분야인만큼 
기업에서 앞다투어 관련 차량을 출시하는 것이다. 자율주행차량 산업이 시작된 계기가 무엇일까. 자율주행차량 선구자이며 
국민대학교 자동차융합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현재 ‘언맨드솔루션’ 고문을 맡고 있는 자동차공학부 김정하(기공 81) 동문을 만나봤다. 

사진 | 박태호 기자 zx1619@
사진 | 박태호 기자 zx1619@

기계를 좋아하는 어린이에서 
무인차량 선구자로  
교내에 이용 가능한 ‘자율트램’ 
학생들 편의를 돕고 싶어

부친 밑에서 키운 기계에 대한 애정
군 수송부 장군이었던 부친 덕에 김 동문은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기계를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이에 대해 “부친께서는 기계를 잘 다루시고 기계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퇴직하고도 ‘대우 자동차’의 전신인 ‘새한 자동차’의 사장을 역임하셨어요. 덕분에 저는 당시 차가 몇 대 없던 시절에도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운전도 자주할 수 있었죠. 군 생활 또한 수송병과 장교로 지냈어요.”라고 말했다. 부친이 장군으로 오래 있었기에 그의 진로 선택에 강제성이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 기계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진로 선택에 있어서 아버지의 기계에 대한 애정이 저에게 투영됐죠.” 대학생 초반에는 방황하기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였기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어지러운 환경에서 확고해진 마음
그가 대학을 다닐 당시, 우리 학교에서 공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학교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전이라 전공은 율전, 교양은 명륜에서 들어야 했어요. 뿐만 아니라 고려대 못지않은 운동권의 열기와 우리 학교 재단이 바뀌는 등의 이유로 휴강이 잦았어요. 많이 어수선했죠.” 어지러운 분위기와 진로에 대한 불안으로 그는 공부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다. 1,2학년 시기에 KUSA(한국 유네스코 학생회)라는 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국토 대장정을 다니고 친구들과 친목을 다지는 등 공부보다는 다양한 활동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는 3학년을 마치고 진로를 선택할 시기에 남들과 같이 단순히 취업시장에 뛰어들기 싫었다. 그는 관심 분야였던 기계를 더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하는 ROTC로 군복무를 했던 것도 도움이 됐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연구기관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수준이 되지 못했어요. 그래서 유학을 결심했죠.” 그는 토플을 독학하고, 영어 회화를 위한 미8군 행사 참여하는 등 유학길을 위해 다양하게 노력했다. 

  하지만 영어 공부를 마치고 난 뒤에도 대학원 진학에 어려움이 남아 있었다. “대학원에 지원할 방법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때마침 당시 경영대학 학장님의 자녀가 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어요. 학장님의 자녀분께 도움을 청했고 대학원에 지원을 할 수 있었죠.” 덕분에 그는 신시내티대와 펜실베니아대에서 석·박사를 취득하며 기계 분야의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작은 외삼촌을 보며 위로받은 외국유학
원하던 대학원에 진학하는 데 성공했지만 유학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외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다보니까 힘든 점이 많았어요. 언어가 가장 큰 문제였죠. 한글로 공부했던 교재를 원서로 다시 공부해야 돼서 오전에는 대학원 공부, 밤에는 학부교재를 원서로 공부했죠.” 덧붙여 그는 “언어장벽만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차있는 학생들이 넘치는 곳이었어요. 비상한 친구들이 많아 같이 공부하며 좌절을 느끼곤 했죠. 극단적이긴 하지만 문 앞에 노끈을 걸고 실패하면 죽겠다는 마음까지 갖게 했었죠.” 그는 어려움 속에서 특별한 멘토가 됐던 외삼촌을 떠올리며 “어느 날 작은 외삼촌이 당시에 정말 구하기 힘든 유럽행 비행기 표를 주며 2주 정도 여행하고 오라고 하셨어요. 돈도 없고 소통도 어려웠지만 유럽은 문화, 시설,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그때부터 새로운 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이 생겼죠.”라고 말했다. 덕분에 그는 힘들 때마다 당시 받았던 충격을 떠올렸고 유학생활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는 힘들지만 동경하던 외국 생활 속에서 하고 싶었던 공부를 원 없이 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캠퍼스에서 밤을 새고 해가 뜨기 전 어스름 드리운 길을 걸으며 집에 돌아가면서 느낀 그때의 벅차오름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교수가 되기까지와 직업에 대한 애정
그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구를 계속 하고 싶어서 교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외국에서 교수를 하고 싶어서 지원했고 취임을 했죠. 하지만 부친이 한국에서 생활하기 바라셔서 돌아왔어요.” 그는 한국에서 교수가 되고자 대학을 물색하던 중 국민대에 자동차공학부가 개설된 것을 보고 국민대 교수가 되기로 결정했다. 국민대에 교수가 되고서 30년간 연구를 해온 그는 학교라는 곳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교수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학교는 순수함으로 가득하고, 후배들에게 지식을 가르쳐주고, 스스로에 대해 깊이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좋아요.” 요즘 들어 그런 순수함을 잃어가는 세태가 아쉽다는 그는 본인만의 뚜렷한 소신을 밝혔다. “연구비를 위해서 연구를 하는 교수들이 있어요. 제가 최고는 아니지만 선구자로서 이 길을 개척할 수 있었던 건 순수하게 제가 한 분야의 선구자라는 자부심을 되새기며 한 길만 팠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원하는 연구를 30년간 가능하게 해준 교수라는 자리는 그만큼 저에게 의미가 있죠.”

무인차량 황무지에서 길을 개척해나간 연구
1990년대 무렵 우리나라 무인차량 산업은 황무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무작정 ‘무인차량 상용화’를 목표로 잡았다. “자동차 연구자가 추구하는 길은 ‘친환경’과 ‘고안전’ 두 가지입니다. 그 중에서 저는 ‘고안전’을 선택했어요.” 그는 학부시절 배웠던 자동차와 대학원시절 배운 로봇을 융합시킬 분야가 무엇인가 고민했다. 마침 유학 생활 동안 접한 카네기대와 MIT가 진행 중인 무인차량 연구에 영감을 받았고 무인자동차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무작정 무인차량 연구에 뛰어들었지만, 새롭게 황무지를 개척해나가는 과정이었기에 그는 연구를 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우선 무인자동차에 필요한 지도를 새롭게 일일이 제작을 해야 돼요. 그리고 자동차 주변을 인식하는 각종 센서도 개발해야하고 그런 데이터를 종합하는 소프트웨어도 필요해요. 즉 기존의 자동차 산업과 IT산업의 융합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복도에서 소형 차량을 일직선으로 주행시키는 단순한 것도 쉽지 않았어요.” 그는 무인차량 연구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언맨드솔루션(무인차량연구실)’이라는 실험실 회사를 창업했다. “연구하는 사람이 사업을 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죠. 빚도 많이 지고 사고도 많이 났죠. 차량 실험 도중 리모컨이 말을 안 들어서 차가 들이받아 다리가 잘릴 뻔했고 제자가 탑승한 차량이 전복돼서 큰일 날 뻔하기도 했어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 그는 꿋꿋하게 무인차량 연구자의 길을 고수했다. “열심히 한 길만 연구를 하니까 그래도 차츰 문제들이 해결됐어요.” 무인차량의 위상이 높아지고 가능성이 보이자 기업들이 특정 분야 연구를 부탁하기도 하고 ‘언맨드솔루션’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처음에는 더 높은 가치를 보고 협상을 거부했는데 기업 운영의 어려움도 있고 어느 정도 조건도 맞아서 투자유치 일환으로 지분의 4분의 3을 팔고 현재는 고문 역할로 활동하고 있어요.”

연구자와 학교 교수로서의 목표
아쉽게도 그는 은퇴하기 전까지 완전한 자율주행 차량의 단계 도달은 어렵고 레벨4 단계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무인차량은 사람이 어느 정도로 조작을 가하지 않아도 되는지에 따라 레벨을 5단계로 나눠놨습니다. 레벨4가 되면 사람이 안에 타서 할 일을 해도 거의 무리가 없을 정도죠. 현재는 3단계 정도인데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부산까지 갈 수 있는 수준이에요.” 보통 기술이 개발되고 상용화가 되기까지는 10년이 걸리기 때문에 그가 퇴직 전까지 연구를 완수하는 것이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신 그는 작게나마 학교에 이바지 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국민대는 교내로 차량이 진입을 못해요. 그래서 장애우나 무거운 짐을 든 예술대 학생 등 교내에서 이동 간에 불편을 겪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자율트램’이죠” 아직 주행연습 수준이지만, 머지않아 국민대 교내에 ‘자율트램’ 5~6대 정도를 비치해두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트램’은 셔틀버스와 다르게 정해진 노선이 아니라 목적지를 입력하면 그곳으로 가는 차량이에요. 이런 차량이 5~6대 정도 있으면 학교 학생들의 편의가 높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순수함을 찾길 바라는 선배로서의 조언
후배들에게 조언으로 그는 가치관에 대한 소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요즘은 제가 공부하던 시기와 다르게 취직도 힘들고 경제도 어렵지만, 그래도 제가 자율주행차량 선구자라는 입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돈이 아닌 저만의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도 본인만의 가치를 축적해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는 무인차량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 대한 조언도 덧붙였다. “혹시나 자율주행차량 분야로 나아가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항법시스템, 차량제어, 컴퓨터 통신, 센서 4분야를 기본으로 공부하며 이를 융합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해요. 그래서 기계통신, 센서공학과 전자계통 등을 공부하면 유리하죠. 엔지니어 연구자라면 연구의 전망을 따지지 않고 흥미 위주로 분야를 선택하거나 연구비를 타기 위한 목적으로 연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연구가 엔지니어링으로서 생명력을 가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