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skkuw@skkuw.com)

 

사진 | 한대호 기자 hdh2785@
사진 | 한대호 기자 hdh2785@

 

힙합은 지난 몇 년 동안 주류 반열에 새롭게 이름을 올린 음악 장르다. 그동안 수많은 래퍼들이 보여준 각양각색의 모습은 한국 힙합씬의 춘추전국시대를 연상케 했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적어도 한 번쯤은 그 모습을 들여다본 경험이 있을 법하다.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던 치열한 힙합씬에 대한 대학생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기 위해 현역 래퍼들을 직접 만나봤다. 꾸준한 음악적 행보를 바탕으로 힙합 레이블을 이끌어온 하이라이트 레코즈의 팔로알토(이하 팔로), 허클베리 피(이하 헉피), 레디가 그 주인공이다.

미디어 속 힙합부터 한국힙합의 미래까지
설립 이후 꾸준한 행보, 하이라이트 레코즈 단독 인터뷰

 

각종 힙합 영상과 시각적 콘텐츠들이 힙합의 대중화에 기여해 왔다. 이렇게 ‘듣는 음악’을 넘어 ‘보는 음악’이 중시되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팔로: 저는 뮤직비디오가 음악을 비주얼라이징해 놓은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예술을 보면 어떤 하나의 실체가 있다기보다는 내용 간 경계가 흐려진 채 서로 섞여 있잖아요. 그래서 음악 외에도 새롭고 재미있는 요소들을 많이 녹여내려 해요. 우리가 래퍼라고 음악만 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고,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기도 해야 해요.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얘기죠.
헉피: 음악을 눈이 아닌 귀로만 즐길 수 있었던 때가 그리워요. 제가 어렸을 때는 음악을 들으려면 그 음악에만 에너지를 집중해야 했어요. 방 안에서 음악을 조용히 귀에 꽂고, 가사집을 펼치면 그것만으로도 앞에 펼쳐지는 게 있었어요. 인간 본연의 상상력을 자극했죠. 하지만 시각적인 요소들이 음악과 수시로 결합하다보니, 음악을 감상한다는 말보다 콘텐츠를 단순히 소비한다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이 된 것 같아요.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겠거니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와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에겐 어떤 의미에서 아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레디: 음악에 시각적 요소가 더해졌을 때 수요가 늘어난다면 당연히 ‘보는 음악’을 만들어야겠죠. 대중음악의 주된 소비층이 젊은 세대인 만큼, 그들의 시각적 수요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조차도 그래요. 뮤직비디오를 예로 들면, 음악만 있는 경우와 그 음악을 뮤직비디오와 같이 보고 들을 때 받는 느낌은 서로 달라요. 다른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을 때 뮤직비디오를 함께 보면 영감이 더 많이 떠오르게 돼요. 그래서 음원이 나오면 뮤직비디오를 꼭 보게 되죠.

<쇼미더머니>야말로 ‘보는 음악’의 결정체로서 힙합 장르의 대중성을 한껏 끌어 올린 프로그램이다. 새해에도 영향력이 계속될 것으로 보는지 궁금하다.
헉피: 힙합씬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젊은 세대의 에너지와 맞아떨어지는 만큼 힙합의 대중적 인기가 쉽게 사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좀 늦게 불붙은 만큼 꽤 오래 갈 것이라고 봐요. 특히 <쇼미더머니>가 인기몰이에 크게 기여한 만큼 올해에도 계속 영향력을 미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사실 서바이벌 프로그램 만드는데 있어서 방송사 ‘Mnet’은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아닐까 싶어요. 저번 시즌 지켜봤는데 사람들이 왜 보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대중들이 궁금해 하도록 잘 만드는 것 같아요.
팔로: 일단 방송은 할 것 같아요. 물론 예전만큼 못하다는 얘기가 저번 시즌에도 나왔고, 심지어 올해는 방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작년에 우원재 씨처럼 방송 직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이었다가 대중을 감동시키는 음악을 단기간에 여럿 쏟아낸 좋은 사례가 나왔잖아요. 방송이 끝나고 발매된 음원의 성적도 좋은 편이었고요. 어느 정도 흥행이 되기에 ‘Mnet’에서 아마 이번 시즌도 제작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흔히 학우들이 힙합을 이야기할 때 먼저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디스’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팔로: ‘디스’라는 용어가 방송에서 섣불리 정의되면서 힙합 음악을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 힙합이 너무 가볍게 여겨지고 있다고 봐요. 대중심리의 특성상 불구경이나 싸움구경은 지나가다 보게 되잖아요. 저는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평소에 살아가며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과 메시지들을 음악에 담아내는 것에 가치를 뒀어요. 그래서 누군가의 실명을 거론하며 디스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디스는 흔히 래퍼들 간의 *비프라고 하죠. 실제로 미국에서는 래퍼들 간에 디스전이 벌어지면 악감정을 넘어 피가 동반되기도 해요. 그런 점에서 <쇼미더머니>가 디스 배틀이라는 용어를 좀 섣불리 차용한 면이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랩 배틀이라고 해야 옳았어요.
헉피: 이제는 서바이벌이 방송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일종의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해요. 경쟁과 대립이 허용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힙합씬 전반에 걸쳐 형성되어 있죠. 예전 **컨트롤 대란을 예로 들면, 미디어에서 조명도 많이 받았고 그때 힙합을 알게 된 팬들 또한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 사건들을 통해 대중들이 힙합에 관심을 갖게 되고, 여러 곡을 들으며 힙합을 좋아하게 된다면 괜찮아요. 하지만 디스가 단순히 일회적인 관심을 끄는 것에 그친다면 마냥 좋게만 보기는 어렵겠죠.
레디: 대중들은 래퍼라면 디스에도 무조건 랩으로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디스를 대하는 방식은 래퍼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저라면 디스에 꼭 랩으로만 맞대응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찾아가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할 것 같아요. 비열하다고까지 느껴지는 랩에 저의 소중한 작업시간과 가사들을 투자하면서까지 맞받아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저와 다르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방법이 틀린 건 아니지만 말이죠.

힙합씬에 대립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전 멤버가 참여한 콜라보레이션 앨범도 발매하는 등 레이블 내 결속력을 중시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
팔로: 온라인에서는 아티스트들이 나가는 등의 변화를 겪으면서 하이라이트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들이 들려요. 실제로는 정반대인데 말이죠. 레이블 내 결속력을 반영하는 여러 지표 중 하나가 매출이라고 생각하는데, 새삼스럽지만 올라가기만 했지 떨어진 적이 없어요. 이번 Break Bread 앨범에 담은 가사도 그와 같은 맥락이에요. 우린 ‘Underrated’, 즉 과소평가 되어 있다는 말이죠.
레디: 콜라보레이션이 아티스트들에게 주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아요. 평소에는 아티스트들이 각자 자신의 앨범을 준비하고 있잖아요. 자기 작업에만 몰두하다보면 영감이 바닥나고 지칠 때가 생겨요. 그럴 때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하면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돼요. 그렇게 영감을 공유하다 보면 좋은 시너지가 발생하게 되죠. 결속력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예요.
헉피: 몇 년 전에 ‘식구’라는 노래를 싱글로 냈어요. 아이러니한 점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 식구처럼 느껴진다는 거예요. 팔로알토가 말했듯이 옛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는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하이라이트 레코즈는 옛날의 하이라이트에 멈춰있는 거죠. 그런 기대를 더 이상 우리가 채워줄 수는 없기에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가 느꼈던 레이블의 분위기는 한 번도 아래에 있었던 적이 없었어요.

사회비판을 하는 래퍼들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대중들이 많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팔로: 모든 래퍼들이 반드시 사회비판에 동참해야만 할 의무는 없다고 봐요. 누군가는 사회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걸 음악으로 만들고자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심을 두기보다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삶 자체에만 집중하기도 하죠. 본인에게 의미 있는 계기가 생긴다면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곡과 가사가 나올 거예요.
레디: 결국 래퍼 개개인의 성향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해요. 안 그래도 뉴스에서 정치 이슈들을 가지고 시끄럽게 떠들어대잖아요. 물론 저도 국민으로서 통상적인 수준의 관심은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음악을 들으면서까지 사람들이 굳이 정치를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사실 음악은 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듣는 예술이잖아요.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기분 좋게 들었으면 해서예요. 어떤 사회문제가 발생하면 곡을 통해 본인의 생각을 확실하게 밀어붙이려는 래퍼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래퍼들도 존재하죠. 성향의 차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헉피: 모두 투사가 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사회 속 곪은 부분들을 왜 안 건드려 주느냐는 비판이 래퍼들에게만 향해져야 할 화살은 아닐 거예요. 오히려 그런 현상을 만들어낸 당사자들에게 실질적인 비판이 향해져야 하겠죠. 래퍼들이 십자가를 모두 짊어져야 한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거예요. 천 명의 아티스트가 존재한다면 천 가지의 이야기가 존재하게 돼요. 물론 그중에는 사회비판도 있겠죠.

국내 보이그룹이 미국을 강타하고 빌보드에도 올랐다는 뉴스가 한동안 나왔다. 대중가요의 발원지인 미국에 한국음악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한국힙합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팔로: 차근차근 곡을 만들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꾸준히 펼쳐나가는 사람들이 꿈을 이루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 음악의 진가가 세계에 드러나는 이유죠. 물론 미국이 엔터테인먼트나 팝 시장에 먼발치 앞서나갔고, 지금도 영향력이 상당하지만 결국 세상은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력만 있다면 인터넷을 통해 세계 어디서든지 그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나요. 그래서 지금 힙합음악을 하고 있거나 앞으로 할 사람들은 정말 ‘복 받은 세대’라고 봐요. 본인이 갖고 있는 재능을 세상에 펼치기에 정말 좋은 시대입니다.
헉피: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확실히 구축해놓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싶어요. 해외진출에 성공했다는 사실만큼이나 중요한 점이죠. 싸이를 예로 들면, ‘강남스타일’을 만들 당시만 해도 미국 메이저 장벽에 진입하고 빌보드에도 올라야겠다는 목표를 애초에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거예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다 보면 음악이 무르익게 되고, 결국에는 그 진가가 드러나게 돼요. 노력을 통해 무르익은 음악을 비롯해 다양한 요소들이 맞아떨어져 그런 놀라운 성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봐요.

개강하고 나면 대학생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게 바로 대학축제다. 작년에는 우리 학교에 레디가 초청되어 공연하기도 했는데, 대학축제가 래퍼들에게 주는 의미가 있다면.
레디: 모든 공연이 저에게는 나름의 의미를 줘요. 다만 대학 축제에는 다른 공연에서 느끼지 못하는 에너지가 있죠. 마치 오늘만 살 것 같다는 젊음의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대학생들에게는 특별한 날일 수밖에 없으니, 공연하는 사람에게도 그런 기운이 전해지게 되죠.
헉피: 힙합 장르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도 섭외가 되잖아요. 저를 모르고 그 자리에 계신 분들도 상당히 많은 것이 일반적이에요. 하지만 그게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요. 저를 모르고 오신 분들이지만, 공연 이후에는 따로 헉피나 하이라이트에 대해서 찾아보시게 만들 만큼의 에너지를 쏟고 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늘 무대에 올라가요. 그렇게 공연을 끝내고 나면 개운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번에 만약 불러주신다면 좋은 음악 들려드리겠습니다.

비프=악감정이 동반된 채로 래퍼 사이에 오고 가는 비하, 비난 등을 일컫는 표현이다.
컨트롤 대란=미국 래퍼 켄드릭 라마를 계기로 한국에서 발발한 디스 전쟁이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가사들이 국내 힙합씬을 물들였던 사건으로, 이센스와 개코 간의 디스전이 특히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