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이상국 교수

기자명 이가영 기자 (lvlygy@skkuw.com)

기존의 범죄 연구는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이 비 권력층의 일탈 가능성을 제어하는 것에 있다는 전제하에 이뤄졌다. 그러나 무임승차, 무전취식과 같은 경범죄와 조세포탈과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 가운데 우리 사회에 더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등장한 것이 문화인류학의 ‘상층부연구’다.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이상국 교수를 만나 상층부연구에 대해 들어봤다.

 

상층부연구의 정의는 무엇인가.
문화인류학은 ‘사람에 대한 학문이라고 했다. ‘사람’에는 그동안 문화인류학이 초점을 맞췄던 소수집단뿐 아니라 권력계층의 사람들도 분명 포함된다. 상층부연구는 이러한 권력계층, 즉 문화인류학이 간과해왔던 정치인 또는 기업인과 같은 사람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사실상 현대 사회와 문화는 자본과 기술을 가진 권력계층 사람들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현대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권력계층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상층부연구의 일환으로 문화인류학자들은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에 진입해 기업문화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를 연구한다. 실제로 문화인류학자가 실리콘밸리나 월스트리트 증권사에 들어가 참여관찰을 진행한 사례도 있다.

권력층 연구를 통해 무엇을 파악할 수 있는가.
권력의 작동방식을 파악할 수 있다.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가는 정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문화인류학은 거시적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정치학과는 달리 권력계층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는데, 그들의 문화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정치권력의 작동방식을 미시적으로 파헤칠 수 있다. 권력계층 사람들의 일상 속에 어떤 문화가 녹아있는지, 그리고 그 문화가 상층부 사람들의 지배문화 공고화에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자원을 확보하고 대물림하는 데 사용하는 전략을 파악하고자 한다. 가령 한국 사회의 경우, 관계가 정치의 핵심 요소다. 권력을 가진 상층부 인사들이 맺는 일상적인 인간관계가 결국 한국 사회의 정치와 경제를 주도해나간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상층부 권력층의 일상적 관계망이 한국 정치 환경에 어떤 문제점을 야기하는지 파악 가능하다. 또한, 문제점을 파악한 후에 바람직한 정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각도 제시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상층부연구의 가치는 무엇인가.
상층부연구는 실용적 가치를 다분히 갖고 있다.  단순한 자료 분석이 아니라, 참여관찰 등을 통해 직접 현장을 연구하기 때문에 실천적인 연구 결과를 낳는다. 이때 실천적 연구를 통해 특정한 상황 속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맥락화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중시되는 외교나 국제 협력관계를 구축할 때 상층부 연구가 꼭 필요하다. 상대국에 대한 이해 없이 자국의 이해만을 바탕으로 일방적인 요구를 하게 되면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에서는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그에 적합한 국제적 대응을 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의 일환으로 현지 권력구조를 이해하는 상층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상층부연구를 할 때 문화인류학자가 겪는 어려움에는 어떤 것이 있나.
상층부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상층부 사람들, 즉 △기업 △정당 △정부기관과 같은 조직의 사람들이 연구 대상이 되는 것을 기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상층부 연구가 비교적 활발한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조직 내부에 문화인류학적 접근 자체를 기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문화인류학자가 연구 집단에 진입한 이후에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불편함도 어려움 중 하나다. 상층부 연구자는 연구 집단으로부터 산업 스파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에 연구자는 자신이 문화인류학자임을 미리 알리고 사전에 연구 동의를 받아 조직에 진입하는 기본적인 연구윤리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연구윤리를 준수할 때 이후 조직 내부 구성원들과 보다 원활히 소통하고, 관계를 발전시킬 가능성도 주어진다.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밝히면 진입을 거부당할 가능성이 있지만, 시간을 가지고 연구 집단과 라포(Rapport)라고 일컬어지는 공감대를 형성해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 구성원들이 상층부 연구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연구자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층부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달라.
무엇보다도 다양하고 적극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연구 과정의 어려움을 예상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빈번한 시도를 통해 일차적으로 그 횟수를 늘리는 데 성공했다면, 연구 대상이 되는 조직 내에서 정치권력이 어떻게 작동되는가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치권력의 구조를 연구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반향이 큰 연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거듭돼야 그에 따른 해결책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치권력의 작동방식을 알리는 것은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불러올 수 있다. 현재로서 문화인류학에 관한 관심이 외국에 비해 저조한 우리나라 학계 및 사회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시도 자체를 망설이는 기존의 관행을 극복하고 꾸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