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가영 기자 (lvlygy@skkuw.com)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다양성 대변해
새로운 시각으로 현대 사회 조망해야

 

문화인류학, ‘사람’을 연구하다
문화란 인간과 동물들을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이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이상국 교수에 의하면 문화인류학은 문화의 측면에서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또한 문화인류학은 전체 인류를 대상으로 인간의 문화를 관찰 및 분석하고 그것을 종합해 문화의 법칙성과 규칙성을 탐구한다. 관찰 및 분석을 넘어서 이를 토대로 가설과 이론을 세우고 검증하는 것,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문화인류학의 핵심적인 역할이다. 

이러한 문화인류학은 문화상대주의를 기조로 삼고 있다.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서로 다른 여러 문화에서 표준이란 “양 극단의 폭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것”으로 설명했다. 또한 그는 특정 문화에서 나타나는 원칙은 해당 원칙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그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상대적이며 다른 사회와 문화를 판단할 때 그러한 원칙이 사용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은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문화의 다양성과 각각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흔히 문화인류학이라고 하면 소수민족이나 원시 부족의 특이한 관습과 생활양식에 대해 연구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초기 문화인류학의 연구 대상이 소수민족과 원시 부족으로 제한됐던 이유는 문화인류학을 성립하고 연구를 주도했던 주체가 미국·영국·프랑스와 같은 서구 열강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흥미로운 부족과 민족, 즉 소수사회의 문화만이 연구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 문화인류학에서는 연구 주체가 다양화되고, 주류사회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연구 대상 영역이 확장됐다. 이 교수는 연구 대상의 확장에 기존 연구 주체의 자기반성이 큰 영향을 미쳤다며 “제국주의가 사그라진 이후 성찰적 관점에서 자문화를 돌아보는 흐름이 문화인류학계에서 한동안 지속됐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소수사회뿐 아니라 다수사회 역시 문화인류학의 연구대상이 됐고, 다수사회에 대한 연구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탐색할 수 있게 했다. 이 교수는 “문화인류학은 다양한 사례연구를 통해 사회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현대에 발생하고 있는 사회현상들을 새롭게 설명하고, 문제해결에 도움을 준다”며 현대사회의 문제 해결에서 문화인류학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소수의 목소리를 듣다
초기 문화인류학 가운데 이누이트(Innuit)족의 노래시합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포틀래치(Potlatch) 관습은 지금까지도 학계의 많은 주목을 받는 주제다. 인류학자 애덤슨 호벨에 따르면 그린란드의 이누이트 족은 노래시합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서 생긴 갈등과 다툼을 해결한다. 노래 시합은 불만이 있는 사람이 결투를 신청하는 것처럼 노래 시합을 신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노래가 시작되면 익살과 야유, 조롱 등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상대를 잘 놀릴 수 있는 말솜씨와 노래 실력이 노래시합의 관건이다.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하거나 청중의 압도적 지지를 받게 되면 노래시합에서 승리하는데, 승자에게 특별한 이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래 시합이 최고조에 이르면 사람들은 노래에 집중해 본래의 목적을 잊게 되는데, 이때 갈등과 불만이 해소돼 공동체의 평화가 유지된다. 또한, 북아메리카 북서 해안 인디언들의 포틀래치 관습도 독특하다. 포틀래치는 기쁜 일이 생겼을 때 벌이는 축하 연회를 의미한다. 연회의 주최자는 많은 음식과 값비싼 선물을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연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자신이 경험한 연회에 대한 소회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이 과정을 통해 연회의 주최자는 존경받게 된다. 포틀래치를 많이 베푼 주최자는 명예를 인정받아 우두머리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민족부족별로 가지고 있는 고유의 관습과 문화의 사례를 연구하는 것이 초기 문화인류학 연구의 핵심이었다. 초기 문화인류학은 이러한 연구를 통해 소수민족과 원시집단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각
현대사회에서 문화인류학은 현상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시각을 제기함으로써 부정적 인식을 완화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자폐증을 바라보는 인식 변화는 문화인류학이 현대 사회 내의 차별을 해소하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나라에서 자폐증은 심각한 질병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자폐증이라는 병명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 자폐증과 초기증상이 비슷한 *애착장애로 진단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질병에 대한 올바른 치료를 방해할 뿐 아니라, 자폐증의 원인을 애착장애의 원인과 동일시해 자폐아동의 부모에게 죄책감과 우울증을 가져오기도 한다. 반면 미국의 경우 자폐증을 흔하게 발생하는 질병으로 인식한다. 다른 질병과 차별을 두지 않기 때문에 자폐증에 관한 연구도 무척 활발하게 이뤄져 있고, 교육시설도 매우 다양하다. 또한, 이스라엘의 일부 지역에서는 자폐증 환자의 ‘다름’을 ‘특별한 것’으로 인식해 자폐를 신의 축복이라 말하기도 한다. 문화인류학은 자폐증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널리 알려, 자폐증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일정 부분 거둬내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현실 속으로 한 걸음
문화인류학 연구의 가장 큰 특징은 △총체론적 시각 △사례 중심적 접근 △참여관찰법의 사용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문화인류학적 관점을 토대로 한 현대사회 문제 해결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총체론적 시각이란 특정 현상을 총체적 틀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시각을 의미한다. 하나의 현상을 분석하고 연구할 때 한 가지 학문 분야나 시각만을 가지고 접근하는 대신, 다양한 시각을 통한 조망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시도가 현상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고, 그 과정에서 독창적인 이론을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또한 사례 중심적 접근은 구체적인 사례 연구에 무게를 두는 문화인류학의 특징이다. 타 학문 분야에서 사례연구는 어떤 현상을 일반화하거나 특정 가설을 반박하는 경우에 가치를 갖는 반면, 문화인류학에서는 각각의 사례가 모두 가치를 가진다. 사례 중심적 접근 역시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예컨대 조직 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례 중심적인 접근은 조직의 문제를 진단할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일반론이 아니라 해당 집단에 적용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참여관찰법은 조사자가 피조사자가 속하는 사회나 집단에 들어가 같은 사회생활을 체험하면서 집단의 내면을 관찰하는 방법이다. 참여관찰법의 연구자에게는 다른 방식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적극적인 참여자 역할이 요구된다. 연구 대상의 환경에 녹아들어 자연스러운 모습을 관찰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다. 이 교수는 참여관찰법에서 “연구대상이 연구자를 타자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내에 속한다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연구자를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조직의 문제 해결 과정에서 참여관찰법의 ‘관찰하고 듣는 태도’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관리자의 방어적인 태도는 조직의 문제를 찾는 데 방해가 되는 반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참여관찰법적 태도는 크게 도움이 된다. 이에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정진웅 교수는 “문화인류학의 방법론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현대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애착장애=아동학대나 애정결핍과 같은 후천적 원인으로 인한 심리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