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해빈 기자 (dpsdps@skkuw.com)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 12월이었다. 도서관에서 만난 그는 곱슬거리는 사자 머리에 퀭한 눈, 푹 패인 주름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늘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으며 안경을 쓸 때도, 벗을 때도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모두 그와 대화하기 원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눈빛에 넘쳐나는 아우라는 내가 동경해오던 예술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알베르토 자코메티다. 

그에 대한 기사를 쓰기로 마음먹고 나서 방학 내내 매달렸다. 그의 작품에 관해서 6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수많은 기사와 영상을 봤다. 그는 알면 알수록 새로웠다. 처음에는 그냥 실존주의 철학사상을 조각으로 표현했나보다 했다. 그러나 그가 담아내고자 했던 실존이라는 것, 인간의 본질과 존재라는 것은 단순히 단어 한 개로 표현할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담고자 했던 것은 어떤 허상과 이념이 아니라 인간 자체였다. 이렇게 풀어쓰는 것조차 그의 생각을 왜곡할까 봐 두렵다. 

우리를 죽은 사람과 구별해주는 것, 사물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감정임을 이제 알았다. 이제껏 나는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감정들을 깊숙한 곳에 넣어놓고 살아왔다. 그것이 성숙한 삶의 태도라고 판단했나 보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지었던 미소들은 이제 감정 없는 습관이 돼버렸다. 그러나 절대 사물로 살아가고 싶진 않다. 캐롤린을 만나자마자 그의 특별한 시선에 매료됐던 것처럼, 자코메티가 살아 돌아왔을 때 내 눈을 보고 발견해주었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깊은 감정들로 일렁인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일어나지 않을 그 순간을 위해 나는 오늘 조금 더 솔직해져 본다. 조금 더 크게 목소리 내어본다. 이제 이 세상에도 없는 그가 나를 발견해주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