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2017년 1학기 명륜동 새내기 유생(儒生)의 일상은 그야말로 유생(遊生)의 만끽이었다. 그러던 내가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과감하게 휴학계를 제출했다. 고된 입시전쟁의 승자로서 누려야 할 보상을 한 학기 만에 그쳐야 한다는 사실은 나에겐 큰 모험이었다. 유생(遊生)기간 동안 교훈 하나는 건졌다. 노는 동안 나를 탐색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지금까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나의 현 위치를 정확히 깨닫고, 나 자신을 객관화하는 시간, 즉 수기(修己)의 시간이 필요했다. 휴학이 바로 이 시간이었던 것이다.

휴학의 첫 발걸음은 무크(MOOC)에서 시작되었다. McMaster대 개설강좌 Mindshift: Break Through Obstacles to Learning and Discover Your Hidden Potential은 나에게 쉽지 않은 여정을 예고했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시간은 일주일에 불과 1~2시간에 불과하지만 산더미 같은 그것도 깨알같이 영어로 적힌 자료가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어디 이뿐인가? 수업 후에는 매번 확인 테스트, 과제제출이 손짓하고 있다. 좀 쉴 만하면 수강생들 간에 서로 격조있는 토론을 하란다. 게다가 제출한 과제를 서로 평가하라니? 그래도 인고의 시간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이 강의는 나에게 숨겨진 능력의 단초를 찾게 되는 결정타를 날렸다. 우리 앞에는 나의 ‘보물’을 꽁꽁 숨겨놓은 수많은 장애물이 널려있다. 이것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나에게 소소한 기쁨을 안겨 주었던 일들에서 시작하라! 

애망원에서 중증장애아동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며 돌보던 일, 여성이주민센터에서 가정폭력으로 시달리는 다문화 어린이들에게 정신적 위로와 치유에 신경 쓰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몇 개월간의 공백 기간이 있었지만 지체 없이 다시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늘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에서 나는 특별한 이유 없이 기쁨을 느낀다.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나의 잠재된 능력이 이들을 위해 쓰일 것 같다는 예감은 왜일까?

휴학에 대한 예기치 않은 보상이 2018년 1월에 이루어졌다. 장애아동 및 다문화 아동들에 대해 그동안 내가 기울인 봉사활동과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아시아·유럽재단(Asia-Europe Foundation, ASEF)의 대표적 프로젝트인 ‘ASEF Summer University 21'에 한국대표로 참가하게 되었다. 51개 ASEM 회원국을 대표한 참가자들이 호주와 뉴질랜드에 모여 2주간 현장방문과 전문가 강연 그리고 토론과 공동작업을 통해 유라시아에 내재한 청년장애인 문제의 실용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였다.

휴학 기간이 끝났다. 그렇다고 휴학 미션이 완수된 것은 아니다. 이제 다시 나는 명륜동의 유생으로 되돌아간다. 분명한 사실은 이전의 나는 방향을 상실해 표류하는 유생(流生)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의 나는 수기(修己)라는 조그만 조타기를 단 유생(儒生)이다.

성이효(심리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