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한국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그 특유의 감성과 연출 방식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한국영화는 수준이 떨어진다고 멸시하는 시선을 만나면 기분이 상한다. 그들이 ‘외국 영화’를 수준이 높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대체로 흥행을 거뒀거나 평이 좋은 작품만 국내로 수입되어 스크린에 오르거나 이름이 알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작품들로만 표본집단이 구성되는 셈이다. 반면 국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제작되고 개봉하는 모든 작품이 명작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악명 높은 <리얼> 같은 이른바 '지뢰' 같은 작품도 섞여 있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나름의 논리까지 만들어 보았다. 조금은 변명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 같지만.

그런데 얼마 전부터 표현을 고쳐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장난처럼 떠들던 얘기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뢰'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짜 지뢰들은 따로 있었는데. 최근 미투 운동을 통해 추태가 드러나게 된 성범죄자들 말이다. 이쯤 되니 함부로 지뢰 같다는 표현을 써버렸던 <리얼> 제작진에게 죄송해질 지경이다. <신과함께> <살인자의 기억법> <베테랑> <암살> <변호인> <도둑들>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괴물>.... 전부 지난 며칠 사이 성범죄 가해 사실이 폭로되고 그것을 인정한 배우가 출연했던 작품이다. 당시엔 모르고 봤던, 좋아했던 작품들에 이런 지뢰가 묻혀 있었다는 사실이 불쾌하기 짝이 없다. 피해자에게 지워지기 힘들 상처를 남길 파렴치한 범죄를 자행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제 삶을 영위하고 ‘작품 활동’을 이어간 뻔뻔함에 피가 식는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에서 폭로와 고발이 이어지고 있는 가해자들 모두가 혐오스럽다. 그들과 그들이 저지른 짓은 보다 정의롭고 평등하며 안전한 사회를 위해 제거되어야 할 심각한 병폐다. 각종 권력과 폭력으로 약자의 기본적인 인권마저 짓밟는 범죄행위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철저한 사건 조사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런다면 재범을 방지하고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은 물론,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다른 성범죄자들을 고발하려는 피해자들의 신고 의지가 꺾이는 것을 막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교육을 통한 인식 개선 혹은 온건한 교화 등이 효과를 보겠지만 지금은 응급조치가 필요한 시기 아닌가. 우선 사회를 망치고 사람을 망치는 지뢰들을 걸러내야 할 때다. 더 이상 범죄자들이 시커먼 속을 감추고 선량한 시민들 앞에, 무고한 피해자들 앞에, 또 스크린에 얼굴을 내밀 수 없기를 바란다.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하여.

고원경(경제 17)
고원경(경제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