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해빈 기자 (dpsdps@skkuw.com)

‘피카소가 시기한 예술가’, ‘스위스 100프랑 지폐의 주인공’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조각가가 있다. 바로 알베르토 자코메티다. 비록 그는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인체 미(美)를 최우선에 뒀던 이전 시대와는 차별화된 특징을 지닌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독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이를 극복해내는 인간의 숭고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 거장의 작품 세계를 만나본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예술의 원천이 돼
시대성과 독자성 모두 담고 있어

불분명한 윤곽선
화가란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 조각하기를 고집했다. 그러나 언뜻 봐도 그의 작품들은 인체 조각이라기에는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많은 사람이 미켈란젤로나 로댕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아름다운 인체 조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적으로 만들어진 과거의 조각들은 자코메티에게 죽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에게 가장 숭고한 것은 지금 그의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대화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눈앞의 인간을 흉내 내며 그 본질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보이는 대로 만든다는 것은 눈 모양, 주름 하나를 똑같이 사진처럼 재현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계속해서 시선을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상대방의 눈을 볼 때, 손을 볼 때 그리고 어깨를 볼 때 계속해서 소실점은 바뀐다. 지금 바라보는 어깨는 조금 전에 보았던 어깨와 같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찰나의 순간을 담은 사진처럼 이상적으로 완벽한 재현은 인간을 닮은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처럼 투박하고 일렁이는 윤곽선들이 진짜 인간의 시선이다. 

가늘고 긴 인체
인체 조각이라기에는 너무나 괴기스러운 모습. 무덤 속에서 갓 뛰쳐나온 것만 같은 이 거친 조각 ‘걸어가는 사람’은 보이는 질감과 달리 뼈대가 앙상하다. 가녀린 팔다리는 가벼운 바람에도 쓰러질 것같이 위태롭다. 얇은 다리 때문인지 내딛는 한 걸음이 너무나 버거워 보인다. 그러나 그는 두 발을 떼어내고 있다. 걷기 위해서.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그의 특별한 조각기법도 독특한 형태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뼈대에 살을 덧붙이기보다는 반대로 계속 덜어내는 방식을 사용한 그는, 인체를 비정상적으로 늘어뜨리고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벗겨냈다. 김찬용 전시해설가는 “그의 조각이 가늘고 긴 형태를 띠게 된 것은 심리적 거리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라고 전했다. 자코메티의 두 번째 뮤즈인 이사벨이 자신을 떠나 멀리 대로(大路)로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가까이에서 조각하고 있지만 그때 느꼈던 심리적, 실존적 거리감을 표현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생명이 담긴 시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작품에서 시대를 읽어낸다. 자코메티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 고독과 슬픔에 대한 이미지를 끌어내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김 해설가에 의하면 “사실 자코메티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생명 그 자체였다”라고 전했다. 생명 속에는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 고독과 슬픔 그리고 기쁨과 환희까지 그 모든 감정이 죽은 자와 산 자를 구별한다. 그러한 감정과 생명력의 본질을 자코메티는 시선에서 발견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시선’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시선을 제외한 머리와 나머지 것은 죽은 자의 머리와 같은 해골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러한 가치관은 자코메티가 평생 목격했던 수많은 죽음에서 초래됐다. 그가 처음 죽음을 경험한 것은 스무 살 무렵이었다. 여행 중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났던 노신사로부터 그는 동반 여행 제의를 받는다. 그렇게 둘의 여행이 시작되자마자 노신사는 감기에 걸렸다며 기침을 했다. 하루만 쉬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에 첫날부터 그들은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그러나 그의 기침은 멎지 않았고 소음이 사라진 순간 그는 하나의 사물이 되어버렸다. “나에게 죽음이란 늘 장엄한 모험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단지 무(無)이며 보잘것없고 부조리한 것일 뿐이었다. 인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마리 개처럼 죽어버릴 수 있다니. 내 삶은 그날 완전히 흔들려버렸다.” 자코메티는 좁은 방 안에서 한 생명의 불씨가 사그라져가는 것을 모두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그가 평생 불빛 없이는 잠들지 못하도록 괴롭혔다. 그렇기에 자코메티에게 시선을 담은 조각, 즉 영원을 담은 조각을 만드는 것은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는 진짜 예술가였다. 살아생전 얻었던 수많은 부와 명예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에게 사치는 독이라며 한결같이 작은 작업실에서 예술에 열중했다. 입체파, 미래파 등 온갖 예술 사조들이 동시에 튀어나오며 서로 더 튀려고 노력하던 시기에 그는 어떤 미술 사조에도 속하지 않았다. 자신이 보고 느꼈던 것을 감상자도 느끼기만을 바랐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예술가들의 예술가’라고 부른다. 

「자크 뒤팽」, 1965.
「자크 뒤팽」, 1965.
작업실 앞에서 조각을 안고 있는 자코메티
작업실 앞에서 조각을 안고 있는 자코메티

 

 야나이하라 조각을 빚고 있는 자코메티
 야나이하라 조각을 빚고 있는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 1960.
걸어가는 사람」,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