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머물다, 세상과 마주하다
책에 머물다, 세상과 마주하다
  • 이가영 기자
  • 승인 2018.03.26 21:23
  • 호수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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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넓얕이 베스트셀러에서 내려왔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다양한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며 채성호 작가가 한 말이다.
세상을 담은 책으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채사장’ 작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려운 내용도 쉽게 전달하는 작가이고 싶어
대학생 독자들이 관계 속에서 배움 얻었으면

ⓒ웨일북 제공

대학생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는 대학생이었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으면서 돈은 들지 않는 중앙도서관에 자주 갔다. 3, 4학년과 휴학했던 1년까지 모두 3년 정도를 도서관에서 보냈다. 책을 읽을 때 재미있었고, 자유롭다고 느꼈다. 물질적인 결여를 내면을 풍요롭게 함으로써 채웠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책을 골라 펼쳐보면, 잘 안 읽히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그 책은 아직 읽을 준비가 안 됐다는 뜻이다. 그럴 땐 미련 없이 내려놓고 다른 책을 고르면 된다. 반면에 쉽게 읽히는, 스스로 읽을 준비가 된 책이 있다.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잘 읽히는 책을 찾게 된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 업을 할 때마다 새롭게 갈 수 있는 곳이 생기듯, 책의 세계도 동일하다. 나이가 들고 다양한 경험이 쌓이고 나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생긴다. 그때그때 재미있는 책을 찾아 읽기를 3년 동안 반복했다. 이 시기에 책을 읽으면서 공부한 것들을 모아 집필한 것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하 지대넓얕)이다. 책 속에서 배운 것들과 이후 사회에 나가 현실에서 느꼈던 것들이 합쳐져 지대넓얕의 기반이 됐다.

지대넓얕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처음 지대넓얕을 쓰게 된 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다. 주변의 성실한 사람들을 보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면 언젠가 경제적 안정을 이룰 것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경제나 철학을 공부하면서 그 믿음대로 세상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가 생산수단을 중심으로 자본가와 노동자가 대립하는 구조라는 것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기업에 취업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감사하게 여긴다. 정기적인 수입이 보장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을 보면 실제로 생산을 담당하는 주체는 노동자인데, 기업을 소유하는 사람들이 노동자의 생산물 중 일부를 가져가고 나머지를 임금 형태로 노동자에게 나눠주는 이상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구조 아래서 노동자의 임금은 자본이 스스로 증식하는 속도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필연적으로 계급이 탄생하게 된다. 계급 갈등 자체는 근대 사회의 이야기이지만, 계급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급 대립을 중심으로 어떻게 경제, 사회, 역사, 정치가 이뤄져 있는가를 지대넓얕을 통해 다뤘다. 책을 출판할 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지대넓얕이 몇 년째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베스트셀러는 신의 영역’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집필 계획을 잘 세우거나 글을 열심히 쓴다고 해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대적 배경과 대중의 요구가 잘 맞아야 하고, 내용도 받쳐줘야 한다.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지대넓얕에 독창적인 면이 있었다고는 생각한다.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거나 전달하는 책은 지대넓얕 이전에도, 이후에도 많았지만, 지대넓얕처럼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를 구조를 통해 설명하는 책은 없기 때문이다.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서술했다는 특징이 이 책이 오래 살아남아 많은 사랑을 받게 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독자의 사연이 있다. 출산 뒤 육아에 전념하느라 책도 못 읽고 뉴스도 못 보며 지냈더니, 남편이 대화할 때 무시한다는 얘기였다.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베스트셀러인 지대넓얕을 읽었는데, 그 이후로 시사적인 이슈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 사연을 들었을 때 정말 뿌듯했다. 책에서 읽은 내용을 바로 일상생활 속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특별한 점인 것 같다.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이 무엇인가.
세 번째로 출판한 책인 열한 계단에 가장 애착이 간다.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할만한 보편적인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상반되는 두 가지 내용을 모두 담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집필 과정에서 굉장히 열심히 했고, 그 결과 좋은 책이 나왔다.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기 때문에 지난 삶을 어떻게 보내왔는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만족한 책이어서 그런지, 독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집필했던 책 중에서 가장 좋았다고 말하는 독자도 많이 있었다. 여러모로 애정이 많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예전부터 쓰고 싶어 했던 내용이 가장 많이 담긴 책이다. ‘관계’에 대한 고찰, 자아와 타인 간의 관계, 자아와 세계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무한한 시간 속에서 타인이나 세계와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한 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가에 관해서 서술했다. 말하고 싶은 내용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 소설이나 수필과 같은 이야기 형식을 차용했다.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방법이라, 새로운 느낌을 줄 것 같다.

독자들이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통해 얻어갔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책 한 권이 마흔 가지 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각 단편이 긴밀한 인과과정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 ‘대중작가’라는 명성에 맞게 책을 읽는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얻어가는 것이 많도록 기획했다. 독자가 살아온 삶이나 경험한 것에 따라 느끼는 것이 많이 다를 것이다. 20~30대 독자들에게는 책 전반부의 자아와 타인 간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마음에 와닿을 것이고, 나이가 많은 독자라면 죽음에 대해 다룬 후반부가 마음에 들 것 같다. 책이 다채롭게 읽히길 바란다. 독자들이 얻어갈 수 있는 것을 마음껏 얻어갔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총 다섯 권의 책을 쓰셨다. 책 간에 어떤 관계가 있나.
책 전체가 방향성을 가지고 출판됐다. 출간 순서를 말하자면 지대넓얕, 시민의 교양, 열한 계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순인데, 다섯 권의 책에 일관된 맥락과 흐름을 뒀다. 첫 번째 흐름은 먼저 출판된 책일수록 객관적인 사실 중심으로 쓰였고 나중에 출판된 책일수록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주관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쓰였다. 두 번째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특정 방식에 따라 책이 쓰였다는 점이다. 우선 지대넓얕이나 시민의 교양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세상이 양분돼 있다는 근대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이후 열한 계단에서는 변증법적 시각을 사용했다. 변증법은 헤겔이 중심이 되는 사유의 방식으로 근대적 사고의 끝자락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현대의 다원론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썼다.

이미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는가.
‘채사장’이라는 이름도, 지대넓얕도 언젠가는 잊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세계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성취해 놓으면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 속에 살아간다. 반면 변화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의 사람이다. 끝없는 변화에 대해 생각하고, 영원히 지속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채사장’이라는 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당연히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인기에 집착한다면 고통스러울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자신의 세계에만 갇혀 있지 않은 작가가 되고 싶다. 본인 얘기만을 하는 작가는 되고 싶지 않다. 평소에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실제로도 그런 내용의 후기를 많이 보게 되는데, 그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 때문에 그만큼 쉽게 읽히는 책을 쓰려고 한다.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지나치게 어려운 책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어렵다. 현학적인 내용의 책을 쓰는 것이 작가 스스로에게는 만족이 될지 몰라도, 일반 독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렵게 쓰면 평론가들이 좋아하고 쉽게 쓰면 대중들을 만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전달하기는 쉽다. 어려운 내용도 쉽게 전달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목표다.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놀았으면 좋겠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대학생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를 지나치게 ‘현명하게’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던져지면, 현명한 어른이 된다. 그러나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을 버티게 하는 것은 대학 시절의 추억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배우던 생활에 대한 기억을 자양분으로 힘든 어른의 시간을 버티는 거다. 요즘은 대학생의 삶이 너무 각박하다 보니 평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시기로 기억해야 할 시간을 그냥 어른처럼 보내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대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비단 학위만이 아니다. 대학에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들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좋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주변 학우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얘기를 나눠보고 재미있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인맥을 쌓으라는 말이 아니라 사고나 생각을 나누며 보내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채성호 작가 페이스북
ⓒ채성호 작가 페이스북
ⓒ웨일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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