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쉬운 선택들을 기억에 남기게 되며,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고통에 시달리기를 바라게 됐던 것 같다. 나에게 왜냐 묻게 된다면, ‘나는 반복해서 나의 목적들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리 목적 삼게 되는 것들은 내가 충분한 고통을 느끼게 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시점에서는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게 될 듯하다. 나는 일면으로는, 내가 나와 목적을 공유하게 된 사람들 중, 그 목적에 관해, 가장 고통스러워하게 되는 사람이기를 바라게 된다.

나는 나의 행동들이(‘생각’ 또한 행동으로 간주) 어떤 고통을 피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억하게 된다. 예를 들게 된다면, 나는 나의 기존의 믿음에 거스르게 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고통을 수반한다는 생각에 지레 겁먹게 되어, 황급히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기억하게 된다. 나는 이외에도 다양한 고통에 대한 회피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게 되면, 거짓말하게 되는 것. 

이러한 나의 경향성이 나를 어떤 목적에 도달하게 되지 않는 듯한 흐름에 갇히게 했고, 그렇게 생각되어 나로 하여금 다른 흐름을 타게 됨을 통해, 내가 목적 삼게 되는 것을 이루게 되었다고 여기게 되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나는 그러한 경향성을 거스르게 되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지 기대하게 된다. 그것은, 적어도 어떤 변화에 대한 암시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거스름’에 대해, 나는 스스로 목적 삼게 되는 것을 명료히 회상하게 되어, ‘새로운 쉬운 선택’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중요히 여기게 된다. 예를 들게 되면, 내가 만약 다른 이들의 의견들에 대한 참고 없이, 그들에게도 새로울 것이라고 추측되는 관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을 목적 삼게 된다면, 나는 내가 떠올리게 되는 어떤 관점도 ‘오래된 것’일 수 있을 것이라는 불안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다른 이들의 관점을 참고하게 되려는 유혹에 사로잡히게 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참고가 나의 목적에 관하여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때, 나는 어떤 시점에 있어 어려운 것이었던 그러한 ‘홀로서기’로의 선택이 ‘쉬운 선택으로의 전회’를 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목적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쉬운 선택들’, 그것들은 나에게 때로는 매우 비합리적인 선택들을 강요하게 된 듯하며, 최근 많이들 경계하게 된 것 같은 ‘열정’을 요구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의 선행 없이, 어떤 변화와 성취가 자각 될지 의문이다. 나에게 그러한 열정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낯설고 고통스러운 것이기에 선택되는 것이다. 나의 생각들에 대한 의심이 없는 듯한 이 형편없는 글은 심지어 나에 의해서도 오해될 수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누구에게나, 오해로라도 도움이 되면 나에게도 좋을 것 같다.

이종민(철학 16)
이종민(철학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