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강동헌 편집장 (kaaangs10@skkuw.com)

“(GM의 대우자동차 인수 당시) 대우 측은 GM이 대우차를 인수하더라도 대우차 브랜드를 유지해야한다는 점을 강력히 주장했다. 브랜드를 유지해야 대우차의 연구개발(R&D) 능력과 해외 마케팅, 네트워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향우 한국 내 생산비용이 올라가면 GM이 중국으로 생산거점을 옮기고 한국은 하청공장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GM은 대우 브랜드를 유지하지만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넣는 대안을 내놓았다. 대우차와 산업은행 측은 이에 반대했지만, 결국 ‘윗선’에서 압력이 내려와 GM의 제안대로 합의했다고 한다.” 2014년 출간된 싱가포르국립대학 경제학과 신장섭 교수의 저서 김우중과의 대화의 한 구절이다.

당시 김우중 전 회장과 대우 측의 우려는 10년 뒤인 2018년 군산 공장에서 정확히 현실화됐다. GM은 한국GM 군산 공장을 5월 말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한국GM의 매출 규모는 2013년부터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해 2017년에는 50만대 생산수준으로 4년 만에 반 토막 났다. 외부에서 자금이 투입되지 않는 이상 한국GM은 파산으로 내몰릴 지경에 이르렀다. 제조업은 다른 산업보다 고용유발 효과와 경제파급 효과가 매우 큰 산업이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수많은 부품 하청업체와 간접 산업으로 고용유발 효과가 매우 커 한 지역의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경제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GM이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하면 생산 손실이 30조 원을 넘고, 총 9만 4000여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군산 공장이 폐쇄될 경우, 군산의 지역 경제는 불 보듯 뻔하다.

실제로 GM은 가치 상승을 위한 투자를 별로 진행하지 않았다. 한국GM의 연구개발은 축소됐고 생산라인도 줄어들었다. 이윤이 되지 않는 곳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다국적 기업의 당연한 경영 전략이다. GM에 있어서 한국은 더 이상 매력을 찾기 힘들다. 한국GM은 GM의 세계 자동차 공장 중 소형차에 특화된 기지였다. 소형차는 2000년대 초반 엔화가치 절상과 유가 폭등으로 잠시 인기를 끌었을 뿐 더 이상의 유인이 없다.

신 교수는 IMF의 논리가 아닌 한국에 알맞은 패러다임의 적용이 필요하다고 한다. 신 교수는 저서 금융전쟁을 통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위한 5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음모론을 믿어라-어느 음모론을 믿을지가 중요할 뿐이다”. 5가지 중 두 번째 명제다. 세계 경제를 둘러싸고 믿기 힘든 각종 음모론이 난무한다. 소수의 독점적 가문이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든지 거대 작전세력이 일부러 금융위기를 일으킨다든지 말이다. 화폐전쟁은 그러한 음모론을 맹신한다. 그러나 신 교수는 금융위기에 대한 부분적인 음모론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버블이 커지다 보면 어느 순간 터지게 마련인데 이때 준비를 못 한 곳은 낭패를 보고, 대비를 잘한 곳은 큰 이익을 얻는다. 금융위기는 대비를 철저히 한 이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게임 체인저’다. 대우자동차 인수 당시, GM은 애초 제시한 금액인 50억 달러보다 훨씬 적은 4억 달러라는 헐값에 대우차를 인수했다. 더 이상 한국에서의 매력을 찾기 힘든 지금, 조용히 자리를 뜰 것이다. 군산 공장이 첫 시작이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세밀한 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