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지웅배 기자 (sedation123@naver.com)

호킹이 우주를 연구하던 시절, 우주 연구자들은 블랙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호킹은 블랙홀이 빛을 방출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이 주장으로 호킹은 아인슈타인에 이어 20세기 최고의 과학자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블랙홀이 빛을 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이기에, 호킹을 아인슈타인 다음 가는 과학자라고 칭하는 것일까. 우리 학교 김윤배(물리) 교수의 입자물리이론연구실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오정근 박사에게 호킹 복사 의의에 대해 유선으로 들어봤다.

블랙홀, 엔트로피 연관지어
양자역학 통해 이해돼

호킹 복사, 양자중력이론과
열역학 연결고리 돼

 

사진 | 김한샘 기자
사진 | 김한샘 기자

엔트로피를 품은 블랙홀
호킹 복사의 의의를 알기 위해서는 엔트로피,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블랙홀과 우주의 엔트로피는 각각 정보학, 열역학의 엔트로피로 대응된다. 정보학에서 엔트로피는 ‘불확실한 정도’로 여러 가지 사건이 있을수록 커진다. 예를 들어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는 사건과 주사위를 던져 눈이 1이 나오는 사건, 두 개의 정보량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동전의 앞면이 자주 발생하므로 더 낮은 정보량을 갖는다는 의미다. 열역학은 △일 △에너지 △엔트로피를 다루는 학문이다. 물에 잉크를 떨어뜨리면 아무런 조작을 가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잉크는 퍼지는데, 열역학에서 엔트로피는 이러한 무질서도를 의미한다. 일은 물체에 힘을 가해 힘의 방향으로 물체가 이동하는 과정이다. 자동차의 내연기관이 열을 전달받으면 피스톤이 스스로 운동을 하는 과정은 일이고, 이를 열역학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열역학 법칙은 근본적인 네 가지가 있는데, 열역학 제2법칙은 우주의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호킹은 블랙홀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인과구조개론 △털없음정리 △양자장론을 통해 블랙홀이 엔트로피를 가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학교 입자물리이론연구실 송한울 연구원은 “호킹은 블랙홀 면적이 항상 증가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이 증명이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논리와 잘 대응되는데, 이때 블랙홀의 면적을 엔트로피와 연결지어 해석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털없음정리(no-hair theorem)는 블랙홀의 상태가 블랙홀의 △각운동량(회전할 때의 운동량) △전하 △질량에 의해 특정 지어진다는 가정이다. 이러한 특징들을 ‘털’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전제 아래 그는 가속되는 *계의 양자이론을 생각했다. 가속되는 계와 중력을 받는 계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원리를 이용해서 가속되는 계에서의 중력가속도를 구했다. 그는 열역학적 온도와 가속도가 비례하는 언루 효과를 이용해서 가속되는 계의 온도를 찾았다. 온도가 있다는 것은 에너지를 가짐을 의미하며, 에너지가 변한다는 것은 엔트로피를 갖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외에도 그는 ‘양자장론’에서 양자들이 블랙홀과 충돌하면 어떻게 산란되는가를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파동이 블랙홀에서 방출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블랙홀이 파동을 방출한다는 것은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뜻이며, 이때 엔트로피의 변화가 일어난다. 즉, 블랙홀이 엔트로피를 가짐을 뜻한다. 당시의 연구자들은 블랙홀이 빛을 방출하지 못한다는 기존의 정의에 매몰돼 블랙홀이 온도를 가지지 못하고 빛을 낼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호킹도 초반에는 블랙홀이 빛을 낼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했지만, 블랙홀 연구 과정에서 블랙홀 경계면에 접한 외부 공간의 강력한 중력장에서 복사가 방출됨을 증명했고 그의 의견을 수정했다. 그는 블랙홀의 호킹 복사 방출이 블랙홀의 엔트로피 변화임을 주장했다.

양자역학으로 이해한 블랙홀
블랙홀에 관한 호킹의 통계적 연구는 양자중력이론을 향한 발전에 기여했다. 양자역학이란 원자, 전자와 같이 작은 크기를 갖는 미시 세계의 물리학을 연구하는 분야다. 규모가 큰 천체는 상대성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양자 크기로 줄어든 블랙홀의 경우 양자들 간에 작용하는 힘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블랙홀을 설명함에 있어 양자역학이 필요하다. 일반상대성이론으로는 블랙홀에서 중력을 거스르는 미시 세계를 예측할 수 없다. 호킹은 양자장론에서 등장한 ‘가상 입자’ 개념을 블랙홀에 이용했다. 가상 입자는 입자와 반입자로 이뤄져 있다. 반입자는 존재할 수 있으며, 입자는 복사돼 탈출한다. 복사돼 탈출하는 입자의 존재를 통해 호킹은 블랙홀이 열을 발산할 때, 입자가 그 에너지원이 된다는 호킹 복사를 발표한 것이다. 오 박사는 “가상 입자를 통한 호킹 복사는 하수구가 물을 빨아들이는 장면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물들 가운데 바깥으로 밀려나는 물들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이 때 하수구는 블랙홀을,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물은 반입자를, 바깥으로 밀려나는 물은 복사돼 탈출한 입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호킹은 중력이 쌍으로 생성된 입자/반입자 중에서 블랙홀 바깥 방향으로 나오는 경우가 작지만 존재할 수 있다는 설명으로 상대성이론의 한계를 넘어섰다.

호킹 복사, 양자중력이론으로 가는 징검다리
자연계에는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이 존재한다. 약력과 강력은 아주 작은 입자 단위에서 작용하는 힘이고, 전자기력은 전하를 띈 물체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이다. 한편 중력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빼놓을 수 없는 힘이다. 물리학계의 목표는 이 힘들을 통합해서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을 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대통합이론이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에서 천체 간에 작용하는 중력을 설명해냈지만 블랙홀의 특이점 앞에서 무력해졌다. 호킹은 호킹 복사를 발견함으로서 입자 반입자의 쌍을 이루어 생성된다는 개념을 도입했고 상대성이론의 한계를 양자역학과 엮어서 설명했다. 블랙홀은 우주의 시초와 맥을 같이하므로 블랙홀 연구는 우주 전체에 대한 연구와 직결된다. 송 연구원은 “호킹 복사는 대통합이론인 양자중력이론으로 나아가는 가장 가능성 높은 연결다리”라며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열역학을 종합해 우주 전체에 대한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