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영선 기자 (y1378s@skkuw.com)

지난 22일부터 오는 29일까지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주최로 ‘인디다큐페스티발 2018’이 롯데시네마 홍대입구관에서 열린다. 2001년 첫 시작으로, 올해로 18회를 맞은 인디다큐페스티발(이하 인다페)는 새로운 제작자 발굴에 힘쓰며 국내 독립다큐멘터리의 흐름을 주도해온 다큐멘터리 영화제이다. ‘실험, 진보, 대화’를 슬로건으로 사회적 발언과 미학적 성취를 지향하며 다큐멘터리 제작자, 연구자, 관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온 인다페. 22, 23일 양일간 그 현장을 다녀왔다.

23일 롯데시네마 홍대입구관에서 416 프로젝트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시네토크 자리가 마련됐다.
23일 롯데시네마 홍대입구관에서 416 프로젝트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시네토크 자리가 마련됐다.

 


기자, 번거로운 도전을 하다
다양화된 문화 시대에 사는 지금, 우리는 다양한 문화 중 정말 ‘나의 취향’에 맞는 문화를 향유하고 있을까. 본 도전은 이러한 기자의 물음에서부터 시작됐다. 우리 학교 고규흔(연기예술) 교수는 돈 혹은 권력 등의 거대 문화자본이 장악하고 있는 문화계 속에서 ‘항상 내가 골랐지만 내가 고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광고에 노출돼서 혹은 남들이 다 향유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대자본에 내 취향을 맡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진정한 나의 관심 분야는 무엇일까’를 고민한 기자는 창작자의 창작 의도와 메시지가 뚜렷한 작품, 생각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을 좋아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이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찾게 됐다. 기자가 찾은 방법은 ‘인디다큐페스티발 2018’에 참여하는 것. 주변에서 쉽게 찾아 향유할 수 있는 문화 활동이 아니라 멀리 찾아가야 하기에 다소 번거로울 수 있지만, 기자는 내가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찾자는 마음으로 인다페에 갔다. 

사회를 밝혀 이해의 장을 제공하는 인디다큐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인디다큐에 대해 영화평론가인 정지혜 인다페 프로그래머는 “규정된 용어는 아니고 독립영화 중 다큐멘터리 장르”라고 말한다. 상업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제작한 영화인 독립영화 중 다큐멘터리 장르라는 것이다.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시장 논리로 상영되는 상업영화와 달리 인디다큐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것을 관찰해 비교적 여과 없이 다루고 관객에게 다가간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또한 관객에게 화두를 던지고 대화할 수 있는 여지를 줌으로써 소통의 기능을 한다.
고 교수는 인디다큐의 목적이 인문학의 목적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관, 사상 이외에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다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지만 실상 그것은 굉장히 협소한 것만 보고 듣는 것이다. 이를 깨고 더 많은 것을 보게 함으로써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 인디다큐의 가치”라고 설명한다. 바로 이 점에서, 경험하지 않아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학습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끈을 마련한다는 인문학의 기능이 인디다큐와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

열려있는 인다페로 들어가기 
인다페는 올해 작품을 크게 국내신작전, 올해의 초점 그리고 하라 카즈오 특별전으로 구성했다. 또한, 다큐로 이야기하기, 시네토크, 다큐멘터리스트의 밤 등 다양한 부대행사들을 꾸려 관객들이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제작자, 프로그래머와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담론을 형성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더불어 신진 다큐멘터리 감독을 발굴하고자 기성 감독들이 멘토로 참여해 그들을 지원하고 완성된 작품을 영화제에 상영하는 ‘인디다큐 새 얼굴 찾기 봄’이라는 사업을 진행하며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누구나 한 섹션 당 5000원의 가격으로 관람할 수 있으며,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원 활동가가 있으니 인다페를 잘 모르는 사람도 부담 없이 방문해 즐길 수 있다. 

화려함보다는 의미와 소통으로 채워진 개막식
지난 22일 오후 7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1관에서 열린 개막식은 인디다큐에 관한 개막 영상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화려하진 않지만, 관객들과 대화하며 어우러진 시간은 인다페가 추구하는 정신이 온전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개막작으로 이솜이 감독의 ‘관찰과 기억’, 권아람 감독의 ‘퀴어의 방’이 선정돼 두 작품이 상영됐다.

정 프로그래머는 개막작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어떠한 이견을 내지 못할 정도로 작품으로부터 설득이 됐던 것 같다”며 찬사를 보냈다. 그는 시간이 지나자 성추행을 당했던 기억만 남은 이야기를 다룬 ‘관찰과 기억’의 경우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희미해졌을 때 무엇으로 지난 기억을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해 굉장히 사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며 이를 보여준 방식이 굉장히 용감하고 감각적이어서 선정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퀴어의 방의 경우 시대적 요청을 잘 감지한 작품이며 방과 퀴어의 결합 속에서 퀴어의 정체성과 방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고 말했다. 덧붙여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보려 애쓰는 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라 방을 넘어선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까지 해볼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선정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개막식은 개막작 상영으로 마무리가 됐으며 이로써 개막일의 날은 저물었다.

던져진 생각 거리의 바다에서 헤엄치다
기자는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작품들을 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작품을 선정하는 데에 고려한 점이 있는데 첫째는 ‘기자가 잘 모르는 소재로 자극을 줄 수 있는 작품인가’였으며 둘째는 ‘제작자와 관객의 대화의 장이 있어 제작자와 다른 관객들의 생각들을 접할 수 있는가’였다. 인디다큐는 다양한 소재의 생각 거리를 던져주었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청춘을 보내는 방법, 차별화 없이 다름을 온전히 인정하는 법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다. 또한 사회적으로 이해관계가 상충된 양측의 만족스러운 합의라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계속 기억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잊혀갈 때 관심을 환기하는 법이 무엇이 있을까,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종류의 일이 왜 다른 탈을 쓴 채 여러 사건에서 반복되는가 등의 질문 또한 떠오르게 했다. 이렇게 인디다큐는 다양한 질문을 던져주기도, 스스로 자문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작은 세상에서 같은 일상을 살던 한 개인에게 큰 세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건강한 자극을 주었다.

다양한 작품 중 기자에게 가장 와 닿았던 건 올해의 초전3 섹션의 △송전탑 △765와 용회마을이라는 작품이다. 밀양시와 청도군의 송전탑 반대 투쟁을 그린 두 작품은 PD 저널리즘을 떠올리게 했다. 주류의 미디어조차 조명하지 않거나 조명하기를 멈췄지만, 꼭 전달해야 할 이야기를 다루는 것으로 인디다큐는 언론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었다. 지금도 주류 미디어에선 소외됐지만 꼭 알려야 할 이야기가 넘쳐흐른다. 사람들이 차려있는 화려한 것을 추구해 다수의 미디어가 그것을 조명할 때 주류의 미디어조차 다루지 않았지만 꼭 다뤄야 했던 소재까지도 인디다큐는 시선을 내어준다. 그렇게 인디다큐는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관객이 가진 시선의 범위를 넓혀준다.

생각을 나누는 소통의 시간
‘청년의 봄, 청년을 봄’이라는 섹션의 주제로 묶인 △허건 감독의 불편한영화제 △박향진 감독의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지만 도움이 된다와 ‘진실을 찾는 상처의 부표’라는 주제로 묶인 △‘416 프로젝트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속의 작품은 각각 관객과의 대화인 GV(Guest Visit)와 사회자와 패널의 진행 하에 관객과 대화하는 자리인 CT(Cine Talk)의 시간으로 상영 후 관객들과 대화하는 자리를 가졌다. 

GV는 △간단한 감독 소개와 작품설명 △관객과의 질의응답 및 피드백 시간으로 구성됐다. 두 번째 코너에서 익명의 관람객 A 씨는 “두 감독 모두 공동체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었는데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하였다. 이에 허 감독은 작게는 영화 소재인 너멍굴 영화제를 홍보하는 메시지가 있었고 그 이상으론 ‘불편함’이라는 단어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인생에서 기억나는 걸 되새겨보면 불편하게 힘들었던 경우가 많다”며 그게 나중에는 달콤하게 되찾아오기도 하는데, 이런 시각에서 불편함이라는 단어에 대해 사람들이 면밀히 알아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 감독은 도망치는 시도가 비난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다며 “무기력하고 나태한 것이 단순히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억압된 환경 때문일 수도 있으니 마음의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들었다”고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또 다른 익명의 관람객 B 씨는 박 감독에게 영화의 메시지를 감독이 연출의도를 설명해서 그제야 알게 됐다며 영화를 볼 때는 내내 왜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관객과 공적인 담론을 이끌어내고 싶다면 구성이나 편집의 방식 혹은 출연자를 캐릭터화하는 방식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해 관객에게 약간의 친절함을 베풀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CT는 GV보다 각 감독과 패널의 이야기가 좀 더 추가된다. ‘416프로젝트 공동의 기억:트라우마’는 △오지수 감독의 ‘어른이 되어’, △주현숙 감독의 ‘이름에게’, △문성준 감독의 ‘상실의 궤’, △엄희찬 감독의 ‘목포의 밤’ 이렇게 4작품으로 구성됐으며 각각 △세월호 생존학생 △제3의 인물 △피해 부모님들 △목포 신항을 초점을 둬 같으면서도 다른 세월호 이야기를 풀어갔다. 감독들이 왜 해당 관점으로 풀어냈는지 연출 의도 등을 이야기한 후 패널로 참석한 4·16연대 안순호 공동대표에게 세월호 관련 현재의 이슈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질의응답시간에 관람객 C 씨는 자신을 세월호 세대라고 표현한 오 감독에게 청년이 바라는 기성세대가 세월호를 잊지 않고 연대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이에 대해 오 감독은 “청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 한사람은 주체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며,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침묵을 요구하지 않고 청년들이 하는 활동이나 내는 목소리에 대해서 ‘고맙다, 같이 동료가 되자’라며 같이 연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감독과 관객 모두에게 이와 같은 자리는 서로의 생각을 들어보고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기회가 됐다.

다큐 상영 후 관객들이 궁금한 점과 소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다큐 상영 후 관객들이 궁금한 점과 소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다큐 상영 후 관객들이 궁금한 점과 소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