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강동헌 편집장 (kaaangs10@skkuw.com)

“정의로운 대한민국,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개헌을 앞당겨야 한다. 지금이 적기다.” 지난달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의 개헌안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 개헌 시기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날 문 대통령은 대통령 4년 1회 연임제 구상을 제시하며 오는 6월 지방선거와 개헌투표가 동시에 이뤄져야함을 딱 잘라 말했다.

개헌에 대한 논의는 헌법의 30년 역사만큼이나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1987년 유신헌법에서 현행 헌법으로 개정된 이래, 현 헌법 체계가 지닌 허점은 끊임없이 우리 사회 폐단으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그동안의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에 방점을 찍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헌에 대한 핵심 논의 중 하나는 ‘제왕적 대통령’ 문제다. 현대 입헌민주국가에서 정부는 대통령제, 의원내각제의 크게 양대 형태로 나뉜다. 제왕적 대통령은 대통령제에서 행정부의 기능과 권한이 입법부, 사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막강해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문제를 가리킨다. 막강한 대통령제가 지닌 문제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병폐로 나타났다. 20세기 저명한 정치학자 후안 린츠는 이러한 문제를 명확하게 진단했다. 린츠에 따르면 대통령제에서는 대선을 통해 선출된 대통령과 총선을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의 두 가지 민주적 정통성이 상존한다. 이때 대통령과 반대되는 정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여 두 가지 정통성이 충돌할 경우 제도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어 교착 상태에 빠진다. 내각제에서는 입법부인 의회와 행정부인 수상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유연하게 해결가능하다.

“중요한 의미의 순서대로 보면, 국민 민의를 받들어 문제 해결하는 최첨단에 국회가 있다. 국회가 입법한 것 대통령이 집행할 따름이다.” 2012년 대선출마 선언 당시 안철수 전 국회의원의 발언은 제왕적 대통령이 지닌 문제를 명확하게 포착했다. “국회가 입법한 것을 대통령이 집행할 따름”이라는 말은 입법부가 대의제의 최전선에서 국민의 불만을 받들어 법률을 만들고 행정부는 단순히 국회가 입법한 것을 집행하기만 해야 함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 현행 현법에는 그렇게 명시돼 있지 않다. 현 헌법은 대통령에게도 법률제출권이 있음을 허용하고 있고 실제로도 행정부의 입법 활동은 주도적이고 왕성하게 이뤄져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 불신 때문에 반쪽짜리 해결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시사in> 3월 27일자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문 대통령은 2012년부터 사실상 일관된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백지 상태에서 제도원리만 보면 내각제가 더 나은 제도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는 대통령제를 오래 운영해오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국회에 대한 불신이 매우 심각하다. 국회가 나서서 제도 개혁으로 이 불신을 완화할 수 있다면 모르겠으나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대통령 중심제를 축으로 개헌안을 내놓겠다.’”


문 대통령 ‘말 그대로’ 개헌은 지금이 시기적절하다. 촛불 시위로 강력한 여론의 지지를 받는 새 정권이 들어섰고 그동안의 병폐에 대한 불만도 무르익었다. 다만 그 시기적절한 때에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으로 반쪽 개헌에 그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