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집을 설계하고 싶어요”
“지속가능한 집을 설계하고 싶어요”
  • 우연수
  • 승인 2018.04.02 22:11
  • 호수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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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남동 사거리, 창경궁과 종로를 잇는 선 한가운데 우리 학교 글로벌센터가 오롯이 서있다.
전통과 자연을 사랑하는 adf도시건축 대표이사 김동주(건축공학 75) 동문의 ‘작품’이다. 그가 직접 지은 총동창회관의 한 회의실에서, 그를 만나봤다.

ⓒCA현대건축사제공

자연에 심취했던 시골 소년,
성공한 건축가·경영인 되기까지
선후배 네트워크 중요해

흙벽돌과 함께 꿈이 쌓이다
“상주도 촌이지만, 거기서 20km를 더 들어가야 있는 산촌마을에서 자랐어요.” 쌀, 누에고치, 곶감이 유명하다는 삼백(三白)의 고장, 상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김 동문은 늘 자연과 함께 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던 은자산이 그려진 지도 한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릴 때 항상 자연환경에 심취해 있었어요. 저같이 ‘깡촌’을 고향으로 가진 건 축복이죠.” 고향의 자연환경이 훗날 그가 건축가가 되어 설계하는 방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동네 어른들이 직접 흙벽돌로 지어 올린 집은 그에게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건축가 없는 건축물’은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지게끔 해 지금까지 상주에 남아있다. 170년 된 그의 시골집도 김 동문이 아직까지 조금씩 손을 보며 관리하고 있다. “흙으로 만들다보니 건물이 허물어지기가 쉬웠어요. 그런 걸 보며 어떻게 해야 집이 오래 남을까를 고민했어요.” 상주는 그가 건축을 꿈꾸기에 충분한 환경이었다.

자연을 빌리듯이, 환경을 배우듯이
그는 재수 생활을 거쳐 우리 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 그는 순수 미술 동아리 ‘성미회’에서 활동하며 성균관의 명륜당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옛날 유생들이 머물렀던 방을 세 칸 빌렸어요. 거기에 화구를 가져다 두고선 허구한 날 은행나무 아래서 그림을 그렸어요.” 전통에 관심이 많은 김 동문에게 성균관은 자연과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역사적인 건축물이었다. “운동장에서 일부러 창덕궁 비원 쪽으로 공을 차기도 했어요. 경비원한테는 공이 넘어와서 들어왔다고 하고 몰래 구경하는 거죠.” 그는 전통적인 건축물로 둘러싸인 캠퍼스 생활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당시 건축공학과에서는 전체 학생의 7~8%만이 설계 분야를 선택했다. 하지만 옛날부터 미대를 희망했을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기에 그는 설계 분야로 나아갔다.

우리 학교를 졸업한 후 건축가로 활동하면서 자연에 대한 철학을 고집했다. “건축은 자연에 도전해서는 안 돼요. 자연을 빌리듯이 설계하는 게 제 컨셉이죠. 그대로 있는 자연을 우리는 빌려 쓰다 가는 거예요.”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을 추구하는 그는 환경도 중요시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지형이 다양해서 바로 옆이라도 모든 요소가 달라져요.” 설계를 할 때 소리, 방향, 빛, 그리고 바람 같은 여러 환경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예를 들어 방에 둔 화분이 잘 자라지 않으면 환경이 안 좋다는 뜻이에요.” 국정원은 그가 환경을 고려해서 설계한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보안상 다 말할 순 없지만, 국정원은 주변의 산을 사무실 안으로 끌어들이게 설계했어요. 건물 어디에 가도 산의 경치가 한눈에 다 들어와요.” 한편, ‘청심평화월드센터’는 층에 따라 출입문을 달리함으로써 경사 있는 주변 지형을 그대로 살렸다. 김포에 위치한 수도권매립공사 시설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환경에 대해 뚜렷한 주관을 가진 김 동문에게 매립지 설계는 더욱 의미 있었다.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해외를 많이 다녔어요.” 한국은 난지도나 하수처리장 같은 환경 시설을 설립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했다. 그는 환경 시설의 개발이 아직 초기 단계인 국가에서 관련 설명회와 전시회를 개최하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에 초청 돼 많은 자료를 제공했죠. 그리고 아시아개발은행이나 세계은행에서 환경 보호를 위해 굉장히 많이 투자하는데, 이런 걸 활용할 수 있도록 각종 정보를 알려줬어요.” 베트남에서 시장을 사무실에 직접 초청해서 워크샵도 수차례 진행했다. “건축이 아무리 잘 돼도 가장 근본이 되는 환경이 망가지면 아무 소용없죠.

성공한 CEO는 다시 고향을 향했다
김 동문의 활동은 환경과 관련된 건축에만 그치지 않고, 베트남 청사 건축, 주차장·경마장 법령 제정, 신도시 계획 등 각종 분야에도 이르렀다. 국내 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국가들까지 활동무대를 넓힌 그는 이전에 전무했던 해외 도시 개발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확보해 국내 기업이 훗날 해외로 진출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거창하게 국가를 위했다기보다는, 해외에서 일하려면 정보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한 거죠.” 그의 해외진출은 선진엔지니어링 대표이사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선진엔지니어링에서 대표이사직을 연임하긴 했지만 그의 소망은 그저 스튜디오에 파묻혀서 도면 스케치만 하는 것이었다. “원래 선진엔지니어링에 입사를 했다가, 회사를 그만두고는 스튜디오에서 일했어요.” 하지만 선진엔지니어링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의 부름에 그는 다시 회사를 찾아갔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회사에 간 날이 대표이사 취임식이었어요.” 회사에 복귀한 후 그는 총괄사장 직을 맡아 건축과 토목이라는 두 분야 모두를 경영했다. 그의 전공인 건축 분야만 아니라 토목 분야까지 업무량이 상당해서 4년 동안 그는 쓰러질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게다가 직원 간 화합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제가 없는 동안 회사에 일이 있어서, 직원들끼리 분위기가 건축과 토목으로 나눠져 있었어요. 회사를 한 마음으로 만들기 위해 부서장도 안 가는 경조사까지 다 참여했어요.” 해소되는 분위기와 함께 회사의 매출은 2배까지 올랐다. 각종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고, 2005년에는 서울경제가 선정하는 CEO 경영대상을 수상하는 영예까지 주어졌다.

현재 김 동문은 총괄사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내려놓고 adf도시건축이라는 새로운 회사의 대표로서 자신의 영역을 다져가는 중이다. 그의 업무 중 ‘귀농·귀촌 프로젝트’는 특히 보람찬 작업이다. ‘귀농·귀촌 프로젝트’는 전국에서 귀농·귀촌 인구수가 전국 1위인 상주를 중심으로 귀농·귀촌을 위한 환경을 마련하는 것을 취지로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구분을 잘 안 하지만, 농사를 짓는 귀농과 시골에서 거주하는 귀촌은 삶의 패턴이 달라요.” 이런 차이를 고려해 귀농은 기존의 농가 옆에 집을 짓는 한편 귀촌은 아예 단지를 따로 구성한다. “귀촌 단지를 만들 때 기존에 거주하던 주민들의 행복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귀촌 단지는 너무 크게 만들면 새로 들어온 사람들끼리 ‘세력’이 발생할 수 있으니 적정선을 잘 맞춰 소단위로 구성해요.” 그는 상주를 모범 삼아 해당 프로젝트를 전국에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후배 사랑은 건축을 타고
김 동문은 건축가이자 경영인으로서 다방면으로 성과를 쌓았을 뿐 아니라 학교 선배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학교에서 요청해서 후배들을 대상으로 특강도 여러 번 했어요. 강의하고 나서 밥값이 더 나올 정도로 후배들과 편하게 지냈어요.” 그는 우리 학교 기술고시반 ‘운용재’를 창립하고 현판까지 직접 제작했다. 처음에는 운용재에 대한 지원이 많지 않았지만 차츰 자리를 잡아가서 운용재 출신 모임인 운용동호회도 생겨났다. 그는 운용동호회에서 13년 동안 회장으로 있었다. 이에 더해 ‘성균 건축사회’의 회장을 겸하면서는 선후배 간 네트워크를 본격적으로 구축했다. “보통 선배와 후배가 같은 건축 일을 하면서도 서로 보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건축사회에서는 졸업생과 기성 건축가가 합동으로 전시회를 여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어요.” 김 동문은 우리 학교 건축학과 졸업생과 기성 건축가의 만남의 장소를 마련하고 후배 양성에 힘썼다.

무엇보다도 김 동문은 우리 학교 건물인 글로벌센터(지하우스)를 설계한 장본인이다. 처음에는 건설자문위원으로 참여했지만. 그가 새롭게 제시한 설계안이 기존 안보다 좋다는 평을 받아서 본격적으로 글로벌센터 설계를 담당하게 됐다. 기숙사와 총동창회관이라는 두 개의 용도로 사용되는 건물에서 이용자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용도에 따라 건물의 양쪽에 중심부를 분리하는 등 학우들이 기숙사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동시에 건물에는 우리 학교의 전통성을 담으려 각별히 신경 썼다. “글로벌 센터가 창경궁 근처에 위치해서 건물을 짓기 전에 문화재 심의를 통과해야 했어요. ‘성균관대학교’라는 역사성도 살리고자 부족하긴 하지만 로비의 담장을 *화방벽으로 했어요. 또 대성전 같은 전통 건축물이 어두운 붉은 색을 띠기 때문에, 건물에 전체적으로 붉은 톤을 썼죠.” 또한 12층에 있는 강당은 한 면을 통유리로 제작해서 인사캠이 한 눈에 보이도록 했다. “명륜 캠퍼스와 글로벌센터가 한 테두리 안에서 호흡하길 바랐어요.” 김 동문은 강당이 하나의 문화공간으로서 활발하게 이용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잘된’ 선배가 후배에게
“우리 학교 건축과에서 가르치셨던 윤일주 교수님이 하신 말씀인데, ‘잘못된’ 건물을 많이 봐야 해요. 잘된 건물도 봐야 하지만 잘못된 건물을 보는 게 공부를 많이 하는 거예요. 실패를 통해 배우는 건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말이죠. 좋은 것도 보되 잘못된 것도 놓치지 않고 공부해야 한다고 꼭 얘기해주고 싶어요.” 김 동문은 실패 사례로 배우는 교훈을 강조했다. 또한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눈으로 직접 본 것을 통해 공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해외여행을 많이 가봤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해외로 가는 방법들이 잘 돼 있잖아요. 배낭여행도 좋고요. 어디든 가면 다 배우는 거예요.”

김 동문이 스케치한 글로벌센터.
김 동문이 스케치한 글로벌센터.
ⓒ김동주 동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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